거장들의 화려한 복귀와 가족을 소재로 한 따뜻한 영화들. 올해 칸 국제영화제를 집약하는 말이다.
세계 영화의 향연인 칸 영화제가 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어브 라이프'(The Tree of Life)에 황금종려상을 안기며 22일(이하 현지시간) 폐막했다.
가족 문제 등 따뜻한 영화들이 주류를 이룬 64회째 올해 영화제에서는 칸의 황태자 중 한 명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히틀러 발언'으로 영화제에서 퇴출되고, 김기덕 감독의 3년만의 복귀작 '아리랑'이 실명 비판으로 국내 영화계에 파문을 던지는 등 사건사고 또한 적지않았다.
한국영화의 수상소식도 이어졌다.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은 작년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 이어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에 이 부문 2연패를 안겼고, 손태겸 감독은 학생 중단편 경쟁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에서 3등상을 수상했다.
◇ 올해의 열쇳말은 '가족'
올해 영화제에는 가족 문제에 천착한 영화들이 공식 경쟁부문과 주목할 만한 시선의 대세를 이뤘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국의 거장 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어브 라이프'는 아들 둘을 잃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집착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순수했던 유년기부터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성년 잭(숀펜)의 회상을 따라간다. 부자관계를 통해 우주의 탄생기원까지 살피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대작이다.
그랑프리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다르덴 형제의 '키드 위드 어 바이크'(The Kid with a Bike)도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한 소년이 조건 없이 헌신하는 한 여성을 만나 새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희망적인 내용을 담았다.
심사위원상을 받은 마이웬 감독의 '폴리스'(Polisse)는 부모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는 아동들을 보호하는 경찰들의 활약을 조명한다. 돈이 없어 아이를 버리는 어머니, 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하며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아버지 등 왜곡된 가족의 풍경을 다큐멘터리적인 형식에 담았다.
각본상을 받은 조지프 세더 감독의 '각주'(Footnote)도 명성을 떨치는 교수이자 맞수인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립을 그렸고,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과 함께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공동 수상한 '스톱드 온 트랙'(Stopped on track)도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와 그를 둘러싼 가족 구성원의 갈등과 화해를 다큐멘터리와 형식으로 다뤘다.
상을 타지는 못했지만 린 램지 감독이 연출한 '위 니드 투 토크 어바웃 케빈'(We need to talk about Kevin)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아들과 그에 대한 애정이 없던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을 다뤘다. 평점 최고점을 기록한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르 아브르'도 아이 없는 노인이 아프리카에서 밀입국한 흑인 소년을 도운다는 훈훈한 내용을 다뤘다.
◇ 김기덕 '아리랑'ㆍ 폰 트리에 '나치 발언', 국내외 파문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은 영화제 내내 국내 영화계에 파문을 던졌다.
국내 영화인들을 실명으로 비판한데다가 정부와 한국영화 산업계 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김 감독은 "우정을 끝까지 선택하는 사람은 없어"라는 한탄부터 "배신자들, 쓰레기들" 같은 거친 언어들로 자신을 거쳐 간 영화인들을 정면 비판한다.
아울러 장훈 감독이 메이저와 계약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악역을 주로 한 배우에 대해서는 "악역 잘한다는 건 내면이 그만큼 악하다는 거야"라고 정면 공격한다.
이러한 영화 내용이 알려지자 국내에서는 '오죽하면'이라는 동정론과 '미성숙한 행동'이라는 엇갈린 반응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국내에서 김기덕 감독의 거친 육성이 파문을 일으켰다면 해외에서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히틀러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다.
2000년 '어둠 속의 댄서'로 황금종려상과 1996년 '브레이킹 더 웨이브'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칸의 총아'였던 폰 트리에 감독은 경쟁부문에 오른 '멜랑콜리아'(Melancholia)의 상영이 끝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히틀러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그는 "나는 히틀러를 이해하며 그가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가 마지막 순간 벙커에 앉아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고 했으며 결국 "나는 나치"라는 발언을 해 파장을 일으켰다.
파문이 일자 폰 트리에 감독은 사과를 했지만 칸 영화제 이사회는 폰 트리에 감독을 "기피 인물"로 선언해 세계 최대의 영화 축제인 칸 영화제에 참여 불허 조치를 취했다. 칸 영화제에서는 196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 한국영화 주목할 만한 시선상 2연패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이 독일 안드레아스 드레센 감독의 '스톱드 온 트랙'과 함께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공동 수상했다.
한국 영화는 지난해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 이어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2연패하는 성과를 올렸다. 주목할 만한 시선상 수상자를 2년 연속 한 국가에서 배출한 건 처음 있는 일.
아울러 김기덕 감독은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에 이어 칸 영화제 공식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음으로써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3대 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한 국내 감독은 김기덕 감독이 유일하다. 김 감독은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빈집'으로 2004년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1978년 제31회 영화제에서 신설된 주목할 만한 시선은 칸 영화제 경쟁부문과 함께 대표적인 공식부문으로, 주로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을 소개하는 부문이다.
김 감독은 2005년 '활'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숨'으로 2007년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래로 3번째 도전만에 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손태겸 감독의 '야간 비행'은 학생경쟁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에서 3등상을 수상했다. 한국은 2006년 제59회에서는 홍성훈 감독의 '만남(A Reunion)'이 3등상, 2008년 제61회에서는 박재옥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탑(STOP)'이 3등상, 2009년에는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이 3등상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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