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조 (한국사료협회 회장·전 전북지사)
전북에는 걸출한 인물들이 많다. 지난해에는 남원 출신의 여성등반가 오은선(吳銀善·45세)씨가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 14봉우리를 완등해서 화제를 뿌렸다.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라서 여러 질시도 있었지만 전문가들의 공인을 받아 온 지구촌의 관심을 끌었다.
올해에는 스타 대학총장으로 각종 언론매체의 조명을 받고 있는 옥구 출신의 여걸 이길여(李吉女·79세)씨가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이 씨는 성남시에 위치한 경원대학교 총장이면서 강화섬에 자리잡은 가천의과대학의 이사장이고 인천의 최대 종합병원 길병원의 소유주이다. 또한 수원에 있는 경인일보 회장직도 맡고 있다.
이런 이 씨가 올해 5월 들어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경원대학교와 가천의과대학을 통합하여 수도권 일류대학교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교명은 그녀의 아호인 가천(嘉泉)을 따서 가천대학교로 하고 향후 5년간 매년 200억씩 총 1,000억원을 쾌척하여 대학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0년내 한국의 10대 대학, 그 후에는 세계 100대 대학으로 키우겠다는 당찬 포부를 이 총장은 거침없이 피력하고 있다.
요즘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이 학생등록금에 의존해서 운영하는 데 비추어 이총장의 배포 큰 투자와 의욕은 삭막한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 나이로 80인 노년에 그것도 미혼인 여성으로서 이런 결단을 내리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가르침'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에서 소녀시절을 보낼 때 그녀의 모친은 신간 서적이 나올 때마다 그 책들을 읽어줘서 공부에 취미가 붙었고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회고한다.
이 총장이 의과대학을 설립할 때와 같이 통합대학교 이름을 자신의 아호를 따서 가천대학교로 하는 것도 의미가 심장하다.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들은 일찍이 설립자 이름을 넣어서 지었다. 하버드, 스탠포드, 카네기-멜론대학이 좋은 예이다. 일종의 교육실명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유명 대학이 설립자의 이름이나 아호를 교명에 쓰지 않고 있다. 이 총장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한 후 인천에 산부인과병원을 재개할 때에 '이길여 산부인과'라는 실명을 썼다고 한다. 기껏해야 성을 붙여서 이내과, 김외과 하던 시기에 이길여 의사는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던 것이다. 오늘날 보편화 된 풀 네임 병원이름의 효시가 아닌가 생각된다.
올해로 99세 백수(白壽)를 맞이한 김제 출신의 송방용(宋邦鏞) 선생은 정계에서 귀감으로 존경을 받는다. 고향에서 2대와 3대, 참의원에 당선되고 10대 전국구 의원을 역임한 송 선생은 90대 중반에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憲政會) 회장을 깔끔하게 수행했고 지금도 수시로 원로모임에 참석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살아있는 1,000여명의 전직 국회의원 중 최고령이라는 상징성보다도 심신의 건강성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
특히 이 어른의 사부곡(思婦曲)은 많은 사람의 입에서 회자된다. 10년전에 사별한 부인의 영정과 유골함을 집안의 침실 머리맡에 두고 아침 저녁으로 부인과 인사를 나누며 생활한다니 범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의 또 다른 화제는 전북 바둑의 대를 이을 천재 기사의 탄생이다. 지난 5월 17일 한국기원 입단대회에서 전주 출신의 이동훈(충암중 1년)군이 만 13세3개월의 나이로 초단에 등극했다. 가뭄속의 단비처럼 등장한 이군은 6세 때 전주에서 바둑을 배웠고 9세에 서울로 올라와 연구생을 거쳐 지난해 어린이 국수전에서 우승했다.
전북의 바둑은 우리나라 초대 국수 조남철(부안 출신)로 시작해서 일본 바둑을 평정한 조치훈(조남철의 조카)을 이어 전주 출신의 이창호가 돌부처란 별명으로 오랫동안 전북의 천재기사 지위를 지켜왔다. 이제 이동훈군이 이창호의 바통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창호 9단을 가장 존경한다는 이동훈 초단은 계산이 정확하고 후반이 매우 강해서 이 9단을 빼닮은 꼴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명성을 떨치고 명예를 드높이는 전북인이 많지만 더 소개하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이 글은 필자의 한 단상(斷想)임을 밝혀둔다.
/ 조남조 (한국사료협회 회장·전 전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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