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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도소' 행 버스라니…

은종삼(전 마령고등학교장·수필가)

 

"어! 이름이 바뀌었네." 거리의 간판 이름이 아니다. 고희를 앞둔 한 교육계 인사가 평생 써오던 주민등록부상의 이름을 바꾼 것이다. 비단 이름만이 아니다. 이혼한 여자가 자녀의 성씨까지도 마음대로 바꾸어버리는 세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사무소가 주민센터로, 교육청이 교육지원청으로, 행정자치부가 행정안정부로 등등,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경무대가 청와대로 바뀐 이래 시대에 따라 제도명이나 기관명이 수없이 바뀌어졌다.

 

그런데 유독 바뀌어져야 할 명칭이 그대로 남아있어 목에 가시가 걸린 느낌이다. 바로 교도소행 버스 '행선지 명'이다.

 

필자는 시내버스를 탈 때마다 교도소라고 빨간 글씨로 쓰인 행선지를 보면 참 기분이 언짢다. 왜 하필 교도소행인가. 집 근처 버스 행선지 안내판에는 7개 노선 중 6개가 교도소행이다. 버스를 탔다 하면 교도소행인 것이다. 교도소 버스종점에서 노선을 살펴보니 무려 34개나 되었다. 이는 전주 시내를 비롯하여 완주·임실·김제 등 인근 지역 주민이 이용하는 120여개 전 노선 중 4분의 1이 웃돈다. 전라북도 중심지역이 가히 온통 교도소행 버스로 누비는 것이다.

 

교도소행 표지판을 달고 기세도 등등하게 질주하는 버스가 전주 말고 전국 어느 도시에서 또 찾아 볼 수 있는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다. 교도소가 어떤 곳인가. 말만 들어도 소름끼치는 형무소이고 옛날 감옥이 아닌가. 무슨 명소랍시고 교도소 팻말을 달고 달리는가? 교도소는 어디에 있는지 모를수록 바람직한 사회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아무 생각 없이 타고 내린다. 마치 어물전에 들어가서 냄새나는 걸 못 느끼고 난장판에서 시끄러운 줄 모르듯이 너나 할 것 없이 정서적 불감증 상태에 빠져 있는 듯하다.

 

"지금 어디에 있어?" "어! 여기 교도소야" 버스기사 한 분이 전화로 친구와 대화한 내용이다. 자기도 모르게 교도소라고 한다며 계면쩍게 웃으며 일화를 들려준다. 버스기사 몇 분에게 교도소행 버스 운전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말 같지도 않은지 아예 묵묵부답 형이 있는가 하면 "교도소라는 표지판은 마땅히 바꾸면 좋겠지요." 그러나 쉽게 고쳐질 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즉 대부분 생각은 옳으나 공연스러운 일로 일축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건물 주소 명이 바뀌듯이 버스 행선지 명도 반드시 바뀌어지기를 소망한다. 사람이란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기분도 먹고 산다. 즉 물질적 복지 못지않게 '정서적 복지'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항간에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름이나 성씨를 비롯하여 기관명을 바꾸는 목적은 효율성보다는 시대적 국민 정서를 고려한 것이라고 본다.

 

전주를 찾은 관광객이나 교도소 수감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교도소라는 빨간 버스행선지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의 정서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되새겨볼 일이다. 교도소 이전 계획이 발표된 후 우리 마을에 '교도소 건립 결사반대' 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현재의 교도소가 옮겨지면 당연히 '교도소'라는 표지판도 바뀌어 질 것이다. 어차피 바꿀 바엔 하루라도 앞당긴다면 주민 정서복지 실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관계 당국의 성찰을 기대한다.

 

/ 은종삼(전 마령고등학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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