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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키워온 꿈 이루다

1999년 유치 선언 후 세 번째 도전 끝 쾌거

강원도 평창이 세 번째 도전 끝에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두 번의 잇단 실패로 가슴에 응어리졌던 한을 한꺼번에 털어냈다.

 

강원도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국내외에 처음으로 의사를 밝힌 시점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2월 동계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른 강원도는 대회 폐막식에서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의사를 표명했다.

 

강원도는 낙후한 환경을 개선하고 발전을 앞당길 매개체로 동계올림픽을 점찍고사실상 이때부터 유치에 '올인'했다.

 

2000년 1월 올림픽 준비 전담기구를 만들고 발 빠르게 움직인 강원도는 그해 10월24일 정부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유치신청서를 내고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전북 무주와 힘겨운 유치 경쟁 끝에 2002년 1월 주 개최지 자격을 얻은 강원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유치 신청도시로 공식 통보하고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캐나다의 밴쿠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맞붙은 평창은 2003년 7월2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 동계올림픽 유치 1차 투표에서 가장 많은 51표나 획득, 단번에 꿈을 이루는 듯했다.

 

그러나 과반 득표에 실패해 이어진 2차 투표에서 밴쿠버에 53-56, 단 세 표차로역전패해 분루를 삼켜야 했다.

 

세계적인 도시인 밴쿠버에 지명도에서 밀렸고 아시아 대륙에 동계올림픽을 넘길수 없다는 서구 국가의 암묵적인 짬짜미도 걸림돌이었다.

 

김운용 당시 IOC 위원이 부위원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하면서 IOC가 한국에 두 개의 '선물'을 주지 않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첫 번째 도전에서 실패했지만 세계적인 도시와 어깨를 견준 자신감을 바탕으로 강원도는 2004년 7월1일 유치 '재수'를 선언했다.

 

2005년 유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고 강원도는 그해 7월 IOC에 유치 신청서를 두번째로 냈다.

 

아시아에서는 평창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가 유치를 희망했고 유럽에서는 잘츠부르크와 러시아의 소치 등 5개 도시가 경쟁에 나섰다.

 

IOC는 2006년 6월 7개 도시로부터 받은 8개 분야 25개 항목에 대한 질의응답 내용을 검토한 결과 평창과 잘츠부르크, 소치를 공식 후보 도시로 선정했다.

 

세 도시는 곧바로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불꽃 튀는 경쟁을 시작했다.

 

IOC는 2007년 2~3월 세 개 도시에 대한 현지 실사를 끝내고 나서 평창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발표해 큰 기대감을 안겼다.

 

하지만 2007년 7월5일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의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도시 선정 투표에서도 행운의 여신은 평창에 미소를 짓지 않았다.

 

1차 투표에서 역시 가장 많은 36표를 받았지만 2차 투표에서 소치에 47-51, 네 표 차로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강력한 힘 앞에 무너졌고, 1차 투표에서탈락한 잘츠부르크의 표를 가져오지 못한 게 결정적인 패인으로 지적됐다.

 

세계 각국에서 쏟아진 동정론에 힘을 얻은 강원도의회는 IOC 투표가 끝난 지 보름도 안 된 2007년 7월18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삼수'를 결의했다.

 

강원도가 주축이 됐던 지난 두 차례의 유치전과 달리 이번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2009년 6월22일 기획재정부 산하 '국제행사심사위원회'에서 다른 도시를 뒤로하고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승인했다.

 

2009년 9월14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가 창립총회를 열고 세 번째 도전의 돛을 올렸다.

 

IOC는 2010년 6월22일 평창과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를 유치 후보도시로 선정함으로써 평창이 재도전할 수 있는 기틀이 완성됐다.

 

강원도는 물론 정·재계 거물급 인사가 총대를 메고 전 세계를 돌며 평창 동계올림픽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유치위원회는 2010년 10월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 11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유럽올림픽위원회(EOC) 총회에 대표단을 보내 진일보한 프레젠테이션으로 세계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IOC는 지난 2~3월 유치도시 실사를 끝낸 뒤 5월에 펴낸 평가보고서에서 촘촘한 경기장 배치와 짧은 이동거리, 합리적인 가격의 숙박시설 등 전체 17개 분야에서 평창에 만족스러운 점수를 매겼다.

 

IOC의 조사 결과 한국 국민의 87%, 강원도민의 92%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각각 50%대와 60%대에 그친 뮌헨과 안시를 압도했다.

 

평창유치위원회는 두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유치 때마다 IOC에 내걸었던 드림 프로그램 공약과 설상 경기가 벌어질 '알펜시아 클러스터'의 조밀한 시설 구축 공약을 모두 이행해 IOC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두 번의 유치 실패가 '보약'이 된 셈이다.

 

드림 프로그램은 기후와 재정적인 여건상 동계스포츠를 경험하기 어려운 나라의선수들을 초청하는 행사로, 8년째인 올해까지 47개국 947명의 선수와 청소년이 혜택을 누렸다.

 

유치위원회는 또 알펜시아 리조트에 스키점프대와 IOC 본부호텔, 미디어 빌리지등을 완공하고 선수촌에서 30분 이내에 모든 경기장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동선을 조밀하게 짰다.

 

정부는 IOC의 실사에 때맞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 '올림픽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재정 및 법적 지원과 세관, 출입국 절차 개선에 대해 정부가 보증을 서겠다고 약속했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4월 스포츠 박람회인 '스포트 어코드(SportAccord)'에서 동계 종목 육성을 위해 2018년까지 모두 5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국책사업의 1순위가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알렸다.

 

강원도민의 염원과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맞물리면서 '평창 대세론'은 IOC 위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평창은 마침내 도전 12년 만에 환희의 눈물을 쏟으면서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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