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한 (전북은행장·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전북은 소리의 고장이다.
더늠이 남아 있는 최초의 소리꾼인 권삼득을 비롯해 동편제 소리를 통해 판소리의 전통을 수립한 송흥록과 김세종이 모두 전북 출신들이다. 이뿐인가. 영원한 우리들의 춘향 안숙선 명창도 전북이 낳은 최고 소리꾼이며 완판본의 고장답게 판소리계 소설이 많은 곳도 바로 전주다. 국악 명인들의 산실인 전주대사습놀이가 있고, 내로라하는 명창들도 전주의 귀명창들 앞에서 소리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판소리와 전주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같은 지역의 역사를 근간에 두고 탄생한 것이 바로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다.
우리 전통 음악인 판소리를 바탕으로 세계의 다양한 음악들과 조우하는 공연예술축제로, 우리 소리의 계보를 이어 온 전주에서 벌이는 소리판은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만 따져 물을 수 없는 그만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축제의 가치는 경제적 논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축제 이론가인 데릭손은 '축제란 개인 또는 공동체의 특별한 의미가 있게 하거나 결속력을 주는 사건 또는 시기를 기념해 의식을 행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좀 더 그 의미를 구체화 시키면 축제란 삶의 현실을 문화 예술과 결합시켜 제도화된 형식으로 만드는 것, 즉 사회적, 현재적 삶을 조건으로 노는 집단적 놀이인 것이다. 이처럼 현재의 삶을 담보로 하는 축제야 말로 경영 마인드가 가장 필요한 문화 콘텐츠다. 축제판을 들여다보면 그 곳에서도 기업 경영과 똑같은 원리들이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화가 돈이 되는 세상이지만 그만큼의 상품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상의 효과를 내기 위한 치열한 경영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다. 눈이 높아진 요즘 소비자들의 욕구는 더욱 강렬해졌다.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지 않으면 외면 받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냉정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문화나 축제도 치열한 경영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소리축제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지닌 만큼 소리축제가 앞으로 더욱 성장,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보다 능동적인 경영 전략이 필수다.
지자체의 보조금 의존도가 높은 지역 축제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철저한 마케팅을 통한 문화의 상품화가 필요하다. 특히 이러한 축제를 통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꾀하고자 한다면 지역의 각 기업들과 문화 전문가들이 한 공간에서 놀 줄 알아야 한다. 그 안에서 윈윈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생산적인 축제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라는 것이 공장에서 뚝딱 만들어내는 기계적인 생산품이 아닌 이상, 수많은 다양성을 인정하며 보다 긴 호흡으로 이끌어 가야 하는 '상품'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소리축제는 지난 10년의 역사를 디딤돌로 올해를 새로운 원년으로 삼아 축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상품개발과 자생적 축제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협찬 수익금 확보에도 힘을 쏟았으며, 국악의 스펙트럼을 확대함으로써 대중들과의 소통에 주력했다.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만들어 낸 소리축제만의 최고의 문화 상품들을 이제 곧 만나볼 수 있다. 그 안에서 지역 문화가 지닌 힘과 경제적 가치를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한 은행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와 미국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대신증권 상무이사, 파마그룹 서울사무소 대표, 메리츠증권 부회장, KB금융지주 사외이사 등을 역임했다. 2010년 3월 제 10대 전북은행장으로 취임했으며, 올 봄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됐다.
/ 김 한 (전북은행장·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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