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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싸구려로 안 해먹으면 보답 받겠죠"

"영화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최선의 태도로 임하려고 합니다. 돈이나 명예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인생에서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게 몇 개 없지만, 그 중 하나가 영화입니다. 그걸 싸구려로 안해먹으면 보답이 오겠죠."

 

독특한 스타일로 한국영화의 한 장을 열고 있는 홍상수 감독의 말이다.

 

홍 감독이 12번째이자 2번째 흑백영화인 '북촌방향'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작년 9월 개봉된 '옥희의 영화' 이후 꼭 1년 만이다. 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 24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는 다음 달 8일 개봉된다.

 

 

전작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 만족하느냐고 물으니 "완결만 돼도 그 자체로 좋은 부분이 있다. 해보고 싶은 걸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란 만들고 나서 관객들의 반응이 흡수되면서 완성되는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이며 관객들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영화는 성준(유준상)의 짧은 서울 체류기와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만남을 그렸다. 왜 하필 서울 '북촌'에서 '반복'을 키워드로 작업했을까.

 

"강북에 가면 거의 매번 가는 곳이 북촌이에요. 밥 먹고 차 마시고 가끔 술도 마시는데 만날 가던 곳만 가더라고요. 같은 데를 가는 것도 사람이 하는 짓이구나. 내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고 느꼈죠. 그게 삶의 한 부분이니까 이걸(소재) 가지고 영화를 찍어봐야겠다 생각했죠."

 

그의 영화에서는 늘 술자리가 등장한다. 배우들은 가끔 만취한 상태에서 연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약간 도움받을 정도만" 마시게 했다고 한다. 촬영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되게 조심해요. 조금만 마시게 하고, 음료수로 대체하기도 하죠."

 

아침 당일 나오는 쪽대본에 입각한 제작방식은 여전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시나리오의 줄거리인 트리트먼트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구성없이 백지상태에서 원고를 썼다는 것.

 

술 마시는 촬영장, 급조한 대본. 작업의 외양만 보면 느슨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업 현장은 치열하기로 유명하다.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어도 배우들은 대본의 토씨 하나까지도 틀리면 안 된다. 대사가 꼬였던 유준상은 같은 장면을 50번이나 반복해 촬영하기도 했다.

 

"3분짜리 신(Scene)이 있으면 모든 장면을 좋게 촬영하려면 100번을 찍어도 다 좋게는 나오지 않아요. 3분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20개가 있다면 그중에 15개의 장면에서 중간 이상이 나오면 오케이 하죠."

 

그의 영화에서 보통 교수, 영화평론가, 감독 등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행동은 변주되며 차이를 만들어낸다.

 

홍 감독은 "세상의 모든 인물관계를 담아낼 수는 없다. 삶의 한계라는 게 있다"며 "어찌 보면 비슷한 게 반복되는데 그 안에서 새로운 배열을 찾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최근 1년에 두편씩을 만들며 왕성한 창작욕을 보이고 있다. 작년에는 '하하하'와 '옥희의 영화'를 선보였고, 올해는 '북촌방향'과 이자벨 위페르ㆍ문성근이 나오는 '다른 나라에서'를 찍었다.

 

이번에 함께 작업한 위페르는 프랑스를 오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배우다. 홍 감독은 올해 '이자벨 위페르-위대한 그녀 사진전' 참석 차 방문한 위페르와 막걸리 한 잔을 걸치다가 대어를 낚았다. 위페르는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다.

 

"위페르에게서 전화가 와 잠깐 점심을 먹었어요. '고갈비'집에서 막걸리 한 잔을 걸치다가 7월에 영화를 찍을 건데, 같이 하면 어떠냐라고 제안했더니 '한다'고 하더군요."

 

외국 유명 배우가 나와도 작업방식은 같았다. 홍 감독은 여전히 촬영 당일 아침에 대본을 썼다. 대사가 모두 영어이기에 한글로 대본을 쓰는 것보다 2배 정도의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한다.

 

그는 "번역하는 친구가 한 번 봐 주긴했지만 어차피 엉터리 영어"라며 "영어대사를 사용하니 당연히 배우들이 힘들었을 거다. 그런 힘든 상황이 영화의 재료가 되게끔 했다"고 말했다.

 

홍상수 감독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한다. "원형이 될 만한 고전작품들을 20-30대 때 열심히 봤다"며 "돌아가신 그분들 이상으로 또 다른 참조가 될 만한 감독은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영화 대신 "책을 비롯해 세잔이나 마티스, 램브란트의 드로잉 같은 화보집을 많이 본다"고 곁들였다.

 

매년 2편씩 양산하는 그는 "계절이 변하면 이때쯤 뭐 찍어야하는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영화 만드는 행위 자체가 너무 좋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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