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오르막 힘들어 시간도 더디 흘렀을까…30년전 풍경 속 산동네 봉사활동, 이렇게 좋은 것을… 따뜻한‘사랑 불씨’겨우내 활활 타오르길
좁디 좁은 골목길을 올라갈수록 시간은 거꾸로 흘러 70년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로 70~80년대 서울의 산동네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사진가 김기찬의 ‘골목 안 풍경’이다.
△어색한 만남
일요일인 지난 13일 오전 10시. 이날은 (사)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 전주지부가 올들어 처음으로 소외계층에 연탄을 배달해주는 날이다. 후원사로 참여한 (주)화신 직원과 가족 40여명이 모였다.
봉사자들 사이에서 쭈뼛하게 서있는 모습이 어색했는지 한 소녀가 말을 걸어온다.
“아저씨 어디서 왔어요?” 아이의 눈에도 일하기 싫어 억지로 끌려나온 표정이 보였나보다. 자신도 비몽사몽 아빠 손에 이끌려 나왔다는 소녀가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슬며시 내민다.
연탄을 나르기에 다소 사치스러운 복장을 하고 간 기자는 앞치마 두르고 고무장갑을 낀 뒤 그들 사이로 들어갔다.
△“연탄 올라갑니다”
어색한 시간도 잠시. 골목길을 통해 줄줄이 이어져 오는 연탄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이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연탄을 운반했다.
침묵을 지키며 일사분란하게 연탄을 나르던 분위기를 깬 것은 다름 아닌 세상사는 이야기.
“이번에 딸이 수능 봤다면서?” 길게 한숨을 내뿜는 김씨 아저씨는 잠시 주춤 거리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글쎄 잘 못 봤는지 영 말을 안 혀.”
하지만 잠시 후 씁쓸한 표정을 짓던 김씨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바로 옆에서 외국인 노동자 소노씨(23)가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소노씨가 노래를 부르자 소노씨의 친구 자이날씨(23)도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손길에 느껴지는 사람 냄새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과 어린아이들은 힘에 부치는 기색이 나타났고 연탄을 운반하는 속도가 뚝 떨어졌다.
기자는 ‘힘’을 좀 더 쓰기로 연탄을 릴레이하는 보폭을 넓혔다. 다시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어깨가 뻐근해지고 손이 떨린다. 마음이 통했을까? 이번엔 체력을 비축한 여성과 아이들이 다시 힘을 낸다.
힘이 들면 옆에서 거들어 주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또 모이면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처음 말을 걸어온 소녀가 시커먼 손을 기자의 얼굴에 갖다 대며 장난을 친다. 바로 ‘추격전’이 벌어졌지만 소녀는 ‘임무’를 달성하지 못했다. 처음 어색했던 만남에서 서로 웃으며 장난을 치기까지 우리를 이어준 것은 ‘함께 나누는 따듯한 마음’이었다.
연탄배달봉사 체험을 마치고 나서도 ‘겨울을 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독거 노인의 하소연이 한참동안 귓등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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