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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정보, 드러난 정보

▲ 조승규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비대칭적 정보로 인한

 

역선택의 현상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그널링 장치도 존재한다

 

얼마전 지인과 길을 가다가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해 길가의 가로등을 들이받은 자동차사고를 목격하였다. 그 지인이 자신은 십년 무사고 운전이라면서 ‘저런 사람들 때문에 내 자동차 보험료도 올라간다’고 혀를 찬다. 이 지인의 불평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어떤 이가 안전운전자인지 난폭운전자인지 알 수 있다면 보험회사는 안전운전자에게는 낮은 보험료를 그리고 난폭운전자에게는 높은 보험료를 책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운전자의 운전행태에 대한 정보는 운전자 자신은 알아도 보험회사에게는 감춰져 있는 정보이겠기에, 보험회사는 중간값 정도의 보험료를 균일하게 요구한다. 자신이 가끔 사고를 내게 될 것임을 잘 아는 난폭운전자는 이 보험료를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안전운전자는 자신이 사고를 낼 확률에 비해 보험료가 비싸다고 생각되어 이 보험에 가입하지 않게 된다. 이를 깨달은 보험회사는 중간값 이상의 높은 보험료를 책정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이 보험회사에는 난폭운전자들만 모여들게 된다. 바로, 정보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역선택’의 문제이다.

 

현실에서는 이 역선택의 문제를 해결할 다양한 장치들이 고안된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가 무사고운전자의 경우 운전기록을 공개하는 조건 하에 보험료를 낮춰주겠다고 약속하면 안전운전자는 기꺼이 자신의 기록을 공개하겠지만 난폭운전자는 사고로 점철된 자신의 기록이 공개되길 원치 않을 것이다. ‘운전행태’라는 감춰진 정보가 ‘운전기록의 공개여부’라는 매개체를 통해 드러나게 되고 보험회사는 간접적으로 운전자의 타입에 대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이와 같은 간접적 정보전달장치를 정보경제학에서는 시그널링(signaling)이라 부른다.

 

비대칭적 정보로 인한 역선택의 현상은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있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그널링의 장치 또한 다양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청혼의 이벤트에 남자가 값비싼 다이어반지를 열어보이는 것은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한 시그널로서 굳어진 오랜 관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혼할 생각이 없으면서도 다른 목적을 가지고 결혼을 약속하는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것이어야겠기에, 단순한 금가락지가 아니고 다이어반지가 된 것이다. 변호사 또는 자산설계사들이 외제차에 명품양복을 입고 다니는 이유 또한, 무능한 변호사나 설계사들은 그렇게 고급으로 치장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은연 중에 고객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시그널이 될 수 있다.

 

한참 전 인기 있었던 토크쇼 ‘미수다’에서 한 이태리 여인은 이력서에 사진을 부착하는 한국에서의 관행이 외모차별의 수단이라며, 자신의 나라에서는 사진부착이 선택사항이어서 이런 차별이 방지된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진부착이 선택사항이 될 경우 외모에 자신 없는 후보자들은 사진을 부착하지 않을 것이겠기에, 사진부착여부 자체만으로도 후보자의 외모에 대한 간접적 판단이 가능해진다. 일견 보기에 외모차별방지를 위한 것처럼 보이는 장치가 기실은 외모차별을 위한 교묘한 수단이 되는 것임을 그녀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어느 노처녀가, A라는 결혼정보업체는 남자들의 회원가입비가 너무 비싸 쓸만한 남자들이 가입하지 않을 것이기에 자신은 A 업체를 통해 남자를 소개받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비싼 회원가입비가 바로 무능한 남자들을 솎아내고 능력있는 남자들만이 가입하도록 하는 고도의 전략적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곧 정보경제학의 발견이다.

 

저 위에서 이야기한 필자의 지인은 터무니없는 사고를 낸 그 미숙운전자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의 존재로 인해 안전운전자인 자신이 보험할인을 받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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