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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과 이삭두기

노상준 남원학연구소장

가을걷이를 하면서 들에 남겨두는 농부의 고운 마음씨가 있다. 땀 흘려 가꾼 농산물이지만 날짐승이 먹을 까치밥을 남겨 놓고 가난한 사람들이 주어갈 이삭두기를 한다. 이것이 옛 인심이었다. 까치밥은 가을에 감나무에서 감을 거둘 때 꼭대기에 서너 개의 감은 남겨둔다는 말이고 감 뿐만 아니라 어떤 나무에서든 열매를 얻을 때면 까치밥을 둔다. 들에서 곡식을 거두어 드릴 때도 이삭을 남긴다. 까치밥 풍속은 아름답다. 가을이 지나 겨울에 접어들어 산천에 먹이가 줄어들면 온갖 새들이 감나무, 고염나무를 찾아들고 다람쥐는 밤나무, 상수리나무 아래로 모여든다. 사람들이 남겨둔 까치밥을 먹기 위해서이다. 까치밥을 파먹는 새들을 보고 마을 아낙네들은 인심 좋은 우리 동네 풍년들게 해달라고 빈다. 베풀어야 보답이 온다는 믿음을 우리조상들은 버린 적이 없었다. 그런 믿음으로 빈궁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동고동락하는 대동정신을 가꾸고 살았다. 4~50년 전만해도 가을이 끝나면 들에 이삭줍기 하는 아낙들, 어린이들을 자주 보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겨울 양식에 보태기 위해 이스락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걷이를 하면서 이삭두기를 하는 것이다.

 

후덕한 지주의 논에는 이삭이 남고, 인색한 지주의 논에는 이삭이 숨는다는 속담도 있다. 이제는 그런 풍경을 볼 수는 없다. 아련히 떠오르는 옛 생각일 뿐 지금우리는 물질로써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궁한 처지에 빠져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동이라는 공감대를 상실한 채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는 인심이 이삭두기 같은 풍습을 낳게 했던 것 같다. 아무리 살기가 좋아진다 해도 이삭두기, 까치밥, 고수레 같은 풍습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동안 경제발전 과정에서 능률과 실적만을 내세운 나머지 인정과 의리 그리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전통을 등한시 해 왔다. 그 결과 수단이나 과정의 옳고 그름은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그릇된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이야 어찌되었건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든가, 돈이 최고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우리의 고도성장과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빚어진 부작용이라 하겠다.

 

지금 우리는 고도 산업사회를 지향해 오면서 의·식·주생활은 크게 향상되어 선진국대열에 들어섰지만 정신면에서는 가난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옛날 글자하나 몰랐던 농부들도 다함께 같이 어울려 산다는 대동정신을 지키며 살았던 풍습은 우리를 성실하고 바른생활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선도자가 되는 것도 같다.

 

이제는 우리의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를 다시 확립하기 위해서 조상들의 아름다운 정신적 유산인 미풍양속과 전통윤리사상을 되새겨 보아야한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토인비 박사는 한국에서 꼭 수입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웃어른을 공경하고 잘 모시는 풍습이라고 하였는데 우리의 좋은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릇된 외국의 풍조를 따르는 것이 현대화요, 선진화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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