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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악학궤범과 정읍사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정읍 노랫말, 기악곡으로 변한 점 아쉬워

▲ 악학궤범
정읍시 내장산 망해봉에서 내장산리조트 조성 현장으로 빠지는 산자락.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한 여인이 누워 있다. 머리와 눈, 코, 입, 가슴 선까지 선명하다. 전체적인 실루엣이 누워 있는 여인의 섬세한 형상과 너무도 흡사해 탄성을 자아낸다. 느낌은 처연하다. 이 능선을 오래도록 봐 온 주민들은 1300년 전 정읍지역을 무대로 구전돼 온 정읍사 속 여인이 현신한 것이라며 신기함을 감추지 않는다. 조선시대 악전인 악학궤범은 9권 3책으로 이뤄져 있지만 백제 가요로는 유일하게 정읍만 수록돼 있다. 고대 백제인들은 유난히 노래와 춤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읍사는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다.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네의 애뜻한 마음을 그려낸 정읍사처럼 가요는 세월과 공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를 교감케 한다. 더 많은 백제 가요가 전해지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읍은 음악적으로 삼국 속악의 하나로 전승되어 고려와 조선 시대를 통하여 무고의 무의 때 가창되었고, 특히 조선 시대에 와서는 섣달 그믐날 밤에 궁중에서 마귀와 사신을 쫓기 위하여 베풀던 의식인 나례 후에 거행된 '학연화대처용무합설'에서 처용가 등과 함께 연주되었다.

 

패망의 역사 때문일까. 정읍뿐만 아니라 백제의 가요는 서러움이 배어있다. 여러 문헌 등을 통해 추측컨대, 백제 가요와 음악은 매우 다채롭고 깊이가 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실체에는 접근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조선조에도 정읍은 여전히 무고 정재의 창사로 사용된 사실이 악학궤범에 전한다. 악학궤범은 정읍의 노랫말이 기록된 유일한 문헌이다. 정읍은 전승과정에서 변화가 있었으나, 조선조 내내 궁중악으로 사용되어 오늘날까지 연주되고 있으니, 그 역사는 적어도 천년이 넘는다. 다만 정읍의 노랫말이 조선 후기 무렵에 이르러 불리지 않으면서 기악곡으로 변한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특히 정읍은 수제천, 혹은 무고라는 이름으로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궁중연악으로 연주되었고 1970년에는 파리에서 제 1회 유네스코 아시아 음악제 전통음악분야에서 봉황음 이라는 곡으로 연주되어 최우수 악곡으로 선정, 세계적 거작으로 공인되었다. 전북의 자랑스러운 음악이다.

 

온유한 민족성으로 알려진 백제의 가요, 정읍에는 마치 풍만하고 아름다운 곡선미의 예술이 스며져 있는 듯하다. 백제가요 중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전승해온 정읍사의 생명력은 악학궤범이란 전통음악의 모범답안 속에서 고스란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전북도문화재전문위원· 한별고 교사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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