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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배드민턴 부활 디딤돌 만들어, 모교 널리 알릴 터 "

'전북 출신 올림픽 금' 지역내 대학가 교수 임용 첫 케이스..재벌 막대한 물량공세 뿌리치고 모교행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명성을 전세계에 떨쳤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동문(38).

 

그가 이달부터 모교인 원광대에서 스포츠과학부 사회체육학 교수로 임용돼 후배이자 제자를 지도한다.

 

도내 대학가에서 전북 출신 올림픽금메달리스트가 정식 교수가 돼 강단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김 교수는 특히 캐나다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고, 국내 유수의 재벌들이 막대한 물량공세를 펴면서 감독직 제의를 해왔으나, 이를 뿌리치고 모교에 돌아와 평생의 꿈인 '교수'로 활동하게 돼 학계는 물론, 도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삼일절인 1일 김 교수를 만나 그동안의 발자취와 대학 교수가 된 배경및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김동문'이란 이름만 떠올리면 누구나 배드민턴을 생각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낸 그는 국제대회 76차례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은 바 있다.

 

그의 롤 모델인 전주농고 11년 선배 박주봉보다도 선수로서 더 많은 것을 일궈냈다.

 

전주진북초-전주서중-전주농고(현 생명과학고)-원광대학교를 거쳐 삼성전기에 몸담았다.

 

진북초 4학년 때 처음 배드민턴을 시작한 것이 인생을 바꿨다.

 

당시 임채경 배드민턴 감독이 김동문, 이덕준, 하태권, 황선호를 찾아내 처음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훗날 초, 중, 고, 대학, 그리고 실업팀까지 같은 곳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1992년 고교 2학년 때 첫 국가대표로 발탁된 김동문은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길영아와 함께 혼합복식 금메달을 따냈다.

 

결승전 상대는 박주봉-나경민 조였다.

 

훗날 김동문은 상대 선수였던 나경민과 결혼하게 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자복식 동메달에 이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죽마고우인 하태권과 남자복식 금메달을 획득한다.

 

은퇴 후 캐나다 밴쿠버와 캘거리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한 그는 2008년 9월 김동문국제배드민턴아카데미를 개설하고 캐나다 국가대표 선수를 가르쳤다.

 

지난해말 귀국한 김동문을 찾아 지금도 몇몇 캐나다 선수들은 한국으로 지도를 받으러 오고 있다.

 

김 교수는 "어릴때부터 꼭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일념아래 원광대에서 학사는 물론, 석·박사과정을 마쳤다"며 "공부를 많이해서 정말 멋진 교수가 되고싶다"고 말했다.

 

그가 맡은 과목은 선수보다는 일반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교수로서 원광대의 이미지를 알리는데도 주력할 생각이다.

 

선수 스카우트때 힘이 되고, 모교 홍보대사로 뛰겠다는 각오가 당차다.

 

오는 7월 열리는 런던올림픽때 SBS 해설위원을 맡은 그의 직함은 '원광대 교수'로 소개될 예정이어서 모교에도 체면이 서게됐다고 한다.

 

요즘엔 익산 배산공원에 있는 '김동문 배드민턴경기장'을 볼때마다 더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훨훨 날았던 왕년의 대스타 김동문이 대학교수로서 어떻게 활동할지 벌써부터 원광대나 익산시민은 물론, 도내 체육인들의 이목이 그에게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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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기 bkweegh@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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