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누비며 활동…2011 서울무용제 대상작 디자인…성수기·비수기 격차 심해 떠나는 후배들 많아 아쉬움
널마루무용단(대표 장인숙)이 지난 15일 우진문화재단 예술극장에서 올린 '춤추는 춘향'. 때로는 어둡게, 때로는 밝게 실커튼에 비추는 조명 위로 짙게 드리워진 소나무 그림자는 한 폭의 한국화를 연상시켰다. 마치 은은한 달빛이 감싸는 듯한 무대는 춘향과 몽룡의 해후를 아름답게 떠받쳤다. 이 무대는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도내 1호 무대 디자이너인 이종영(36·LIG 문화재단 기획 디자이너)씨의 작품이다.
무대를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도, 그러나 꽁꽁 숨어있던 그를 지난 17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만났다. 깡말라 바라보는 쪽이 되레 안쓰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제 때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챙기다 보니, 살 찔 틈이 안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연약해 보이진 않았다. 무얼 하든지 간에 끝까지 남아 있을 것 같단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2011 서울 무용제' 대상 작품인 이혜경&이즈음무용단의 '여우못', '2010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연극하는사람들 무대지기의 '눈 오는 봄날', '2009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개·폐막 공연 등은 다 그의 작품이다. 지역의 웬만한 공연단체 무대는 한 번쯤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광주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던 그가 여기에 꽂힌 것은 무용과 친구의 부탁 덕분이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무대 디자인으로 공연을 올려놓고 나니 "한바탕 전쟁을 치른 기분이 들었다". "곰팡이 슬어가는 작품이 있어도 전시하길 두려워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매번 할 때마다 새롭게 전시하는 기분이 들 것 같다"는 거였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고, 전국적으로 무대 디자인을 배울 곳도 드물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쳐 막고 품었다". 게다가 열악한 지역 공연계에서는 일감이 들쭉날쭉했다. 관람객들은 그저 무대에 눈길 한 번 주고 말면 되지만, 세세한 것까지 신경써야 하는 공력에 비해 무대 제작비는 턱없이 낮은 게 문제였다. "작품이자 분신"으로 여기는 그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나, 입소문이 날 때까지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군더더기 없는 무대, 현대적인 분위기는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지만, 이런 매력이 모든 단체와 잘 맞는 건 아니다. 다소 지루하더라도 가슴을 따뜻하게 열어주는, 온기가 느껴지는 작품을 선호한다. 짧게는 6년, 길게는 10년 널마루무용단·CDP무용단과 호흡해온 이유도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초반부터 연출가와 무대 디자이너가 상의해 무대를 만들어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아직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안무자들의 의도를 놓치지 않으려고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대에 대한 교감이 이뤄질 때 진한 여운이 남는 무대가 나오는 것 같아요."
전국을 무대로 누비는 덕분에 그의 몸은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다. 하지만 이렇게 바쁜 그도 공연 비수기가 되는 겨울에는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 매년 이쪽저쪽에서 무대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후배들이 나오지만, 무작정 반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이 고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관심이 가는 것은 전북 문화의 성장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라면서도 "젊은 친구들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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