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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석북집 속의 한벽당

남장한 전주 기녀의 검무 연행 '특이' 역동적 춤사위…삼현육각 반주음악도 유추 가능

조선조에 누정은 각종 공적 환대나 사적 연희가 베풀어졌던 다목적 공간이었다. 전주 8경의 한 곳인 한벽당은 1404년 직제학을 지낸 최담이 지은 곳으로 많은 시인과 묵객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풍류도량이다.

 

이처럼 정자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담론의 장과 예술인들의 교류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이와 같은 정황은 남동철, 신광수 등이 남긴 한벽당 관련 시를 통해서 조선 후기 전주의 누정에서 펼쳐졌던 화려한 연희를 엿볼 수 있다. 한벽당은 지방관리의 연향과 기녀들의 가무를 즐기던 장소로서 평양의 부벽루나 연광정과 같은 공연 공간이었다.

 

많은 문사들이 남긴 시문에 의하면, 신임 관료가 부임하면, 이곳에서 연희를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공철(1760-1840)은 한벽당에서 연행된 검무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붉은 치장 가볍게 들고 도는 춤 / 전립에 바람 불리고 가슴엔 옥전을 찼는데 / 엇바뀌 추는 춤 봄나비 촛불을 맞보내는 듯 / 낮았다 높았다 가을제비 화려한 잔치 휘젓는 듯 / 멈칫 손 내리니 날씨 개이자 우레 멈추듯 / 금시 허리 돌리닌 안개가 걷히듯 / 공손량의 검무가 전해진 것이라지만 / 오히려 장욱이 글씨 배우든 생각을 하지.(금륭집 권 2)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던 검무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일반적으로 전주 검무가 독창적이고 새로운 흐름을 드러냈다고 직접적으로 기록된 것은 없지만, 전주 검무가 다른 지역의 검무와 변별력이 있다는 시도 나온다. 신광수는 1749넌 한벽당의 모습을 '한벽당 12곡'으로 지어 석북집에 남겼다. 그 가운데 전주 한벽당에서의 검무를 보고 나서 그 소감을 소회하였다.

 

전주 아녀자(기녀)들은 남장을 잘하지 / 한벽당에서 검무가 한창이네 / 유리빛 푸른 물에 그림자 보려하나 보이자 않고 / 한벽당 안에 돌려 추는 춤 서릿밭 같네.(한벽당 12곡)

 

궁중과 지방의 교방에서 검무를 출 때에는 전립을 쓰고 전복과 전대의 복식을 갖추고 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전주 검무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 나타나듯이 남장을 하고 추는 것이 특색이다, 지금까지 기생들이 검무를 출 때에 남장을 하고 추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한벽당에서 전주 기녀의 검무는 남장을 하고 연행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벽당 아래로 흐르는 물에 춤추는 그림자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그 춤사위가 역동적이었다. 양손에 칼을 들고 연풍대를 돌며 추는 춤 동작에 동적인 힘을 불어넣기 위해 남장을 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만큼 전주 검무는 역동적이었다. 이 춤에 함께 했던 삼현육각의 반주음악도 유추할 수 있어 매력적인 모습이다.

 

지금은 도심의 복판에 있어 차량소리로 북적이지만 불과 몇 백년 전만 해도 풍류가 단단하게 배어있는 한벽당은 풍류문화를 펼쳐졌던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명소였다.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전북도문화재 전문위원·한별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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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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