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4·11 총선에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들은 오는 30일 임기 시작과 함께 국회법 제24조에 따라 이같이 선서하게 된다. 실로 영광스러우면서도 고된 4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 처음 국회에 진입하는 초선의원 148명(49.4%)의 감격과 각오는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도내 초선 7명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이 4년 후 어떤 성적표를 받고,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기대되는 바 크다. 그들의 성장이 곧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이라는 점에서 출발선에 선 초선들에게 몇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 기성정치에 반란을 꿈꾸었으면 한다.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과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는 3당 합당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통일민주당은 같은 달 30일 서울 마포 당사에서 전당대회를 열었다. 해산을 위한 요식행위을 갖기 위한 것이다. 전당대회 의장이 방망이를 두드리려는 순간, 더벅머리 초선의원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외쳤다. "이의 있습니다." 노무현이었다. 그는 당원들에 의해 끌려 나오면서도 계속 소리쳤다. "이것은 야합입니다. 원천무효입니다." 이후에도 그는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결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기존 정치에 반기를 들고 정의와 나라의 미래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에는 세상을 바꿔보려는 열정이 용광로처럼 끓고 있었다. 이미 한 해전에 열린 5공 비리특위에서 '청문회 스타'가 돼 있었고, 편한 길을 갈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둘째, 정책개발을 통한 대안 제시다. 지난 해 7월,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 송방용 원로회의 의장을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백수(白壽·99세)인데도 기억력이 무척 총총했다. 김제 출신인 그는 자유당이 국회에서 사사오입 사건을 일으켰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암호투표 계획을 폭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4선 의원인데다 금융통화위원과 경제과학심의회 상임위원(장관급)을 10년 넘게 역임했던 인물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후회되는 일이 있다."고 운을 뗐다.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아니오, 아니오 하는 소리는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거다'라고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 때 나는 정열도 있었고 (불의에 대해) 싸움도 했었다. 그러나 대안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DJ 역시 매번 초선의원들에게 "정치보다는 정책에 힘써라."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하라"고 당부했다.
셋째,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들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국회의원이 바뀌면 기초단체장에서 기초의원까지 대폭 물갈이를 하는 게 상례였다. 지방정치인들을 하수인처럼 부리며 줄 세우는데 익숙했다. 공천권을 앞세워 '리모컨 정치'를 해 온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지방자치의 정착에 힘써야 할 사람이 국회의원들이다. 도의원 출신들은 더욱 더 올챙이적 시절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넷째, 좀더 큰 꿈을 가졌으면 한다. 대권에의 꿈을 현실화시키려 노력하라는 말이다. 국회의원의 자리가 중요한 건 틀림없으나 대개 정치인의 최종 목표는 대통령이다. 우리의 정치구조에서 대통령 한 사람의 힘은 국회의원 300명의 힘보다 큰 게 현실이다. 김완주 지사가 전주시장때 일이다. 삼성그룹 유치를 위해 당시 잘 나가던 정동영 의원을 앞세우고 고위관계자를 만났다. 그 때 돌아온 대답이 "전북출신이 대권을 잡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었다. 일례에 지나지 않으나 제2의 DJ와 제2의 노무현이 전북에서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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