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천 K-water전북본부장
당시에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서로 수용하는 선에서 물값이 결정되었을 것이나, 오늘날의 수돗물 가격은 수요자 위주로 장기간 통제되면서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162개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수도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여건에 따라 지자체가 직접 수돗물을 생산·공급하거나 K-water(한국수자원공사)가 광역상수도를 통해 배수지 전단까지 공급해주면, 지자체가 배수지 이후 시설을 설치해서 수돗물을 공급하고 요금을 징수한다. K-water가 지자체에 공급하는 광역상수도 수돗물 가격은 1㎥(1000 리터)에 394원으로 전국 동일하며 지자체가 주민들에게 공급하는 가격은 1㎥에 전국 평균 610원이다. 이 가격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가까운 일본의 수돗물 가격도 우리보다 2.6배 높고, 심지어 덴마크는 1㎥에 4612원으로 무려 7.6배나 높다.
수돗물 가격은 인건비, 전력비, 재료비, 감가상각비 등의 영업비용, 영업외비용, 법인세 및 수도시설 건설비에 대한 기회비용 등을 반영하여 결정된다. 광역상수도 수돗물 가격은 2005년 이후 7년째 동결 중인데, 수돗물 생산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기요금은 그동안 10차례나 인상되었고 소비자 물가도 21.9%나 올랐다. 현재 원가보상률이 81%에 그쳐 수돗물을 100원어치 공급하면 19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지자체의 수도요금 현실화율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가격왜곡이 장기화 되면서 비용이 제대로 회수되지 못한 결과,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노후시설에 대한 재투자가 적기에 이루어지지 못해 큰 손실과 불편이 초래되고 있다. 전국 상수도관의 20%(3만5000㎞)가 20년 이상 된 노후관이지만, 물값 동결에 따른 재원부족으로 적기에 개량되지 못해 많은 누수와 단수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투자재원 부족으로 물산업 기술발전 또한 제약을 받고 있다. 산업화 등으로 원수수질이 악화됨에 따라 고도정수처리 같은 선진기법들을 적극 연구하고 확산시켜 고품질의 수돗물을 공급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이미 500조 원 규모에 이른 전 세계 물산업은 조선 산업의 2배로 성장해 있으며, 선진국들은 물 산업을 새로운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우리가 재원 부족으로 물산업의 육성시기를 놓친다면 향후 물시장 개방이 불가피할 경우 우리의 물주권이 기술력에서 앞선 외국업체에 넘어갈 수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저렴한 물값이 물의 과소비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에 해당되나 '1인당 물 소비량'은 독일·영국의 2배가 넘는다. 전국 광역상수도 시설의 절반 이상이 적정가동률(75%)을 초과한 상태고, 특히 공업용수도 시설은 평균가동률이 85%에 이르고 있어 물의 과소비 구조를 개선하거나 시설 확충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전기와 같은 블랙아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수도요금(1만1429원)은 통신요금의 8.7% 수준으로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2%에 불과하므로 가격을 현실화하여도 추가부담은 미미할 것이다. 낮은 수돗물 가격이 물가안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투자원금 미회수분 만큼 세금으로 충당시켜야 하는바,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세대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본부장은 김제 출신으로 전북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 충남대 토목공학과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남강댐 관리단장, 전남지역본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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