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성 진 전주대 교수·참여연대 공동대표
우리는 대중이 내린 집단적 판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사회는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안철수 현상을 놓고 바로 이러한 고민에 빠져있다. 아직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무소속 비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과연 대선 막판까지 흔들리지 않고 이어질 만큼 신뢰할 만한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집단적 선택에 관한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영국의 골턴은 1907년 우연히 800여 명의 참가자가 각자 소의 무게를 예상해 맞춰보는 장소에 들렀다가 그들이 적어낸 몸무게의 평균치를 계산해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애초 대중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고 싶었던 골턴은 참가자들이 써낸 평균값이 실제 소의 무게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만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그는 '네이처'지에 군중의 판단이 민주주의 선거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이끌어낸다는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집단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집단지능'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집단지능의 힘은 동물의 세계에서 흔히 발견된다. 한 예로 흰개미는 개인적인 능력을 넘어 집단 속에서 탑 모양의 거대한 집을 쌓는다. 그런데 높이가 4미터까지 이르기도 하는 이 탑은 굴과 굴뚝의 원리를 이용해 섭씨 27도와 습도 60퍼센트를 유지하는 정교한 냉난방 장치를 갖추고 있다. 최근 한 연구소에 의해 흰개미의 이러한 집단지능 건축법이 미래를 여는 100대 혁신기술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늘날 대중의 집단지능은 IT 기술의 발달로 더 스마트하고 광범위해졌으며, 더욱 빠른 속도로 더 큰 사회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아랍의 독재권력이 SNS를 통한 대중의 집단 커뮤니케이션과 결집력 앞에 힘없이 무너져가는 모습은 새삼 집단군중의 위력을 느끼게 하는 사례이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반대했던 한국의 촛불시위의 경우 또한 대중이 집단적으로 얼마나 잘 소통하며 변화의 힘을 모을 수 있는지 확인시켜주었다.
안철수 원장이 오랫동안 대선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박근혜후보를 앞질러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일각에서 주장하듯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면 소멸할 거품인지는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야 알 일이다. 하지만 안원장에 대한 대중의 선택은 작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변함없이 지속되었고, 이러한 현상이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언가 집단적인 대중의 지능이 작동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안철수 현상이 집단지능의 결과라면 정치권이 안철수의 등장을 계속 견제하는 것은 대중의 시대적 요구를 모른 체하는 것이 된다. 어쩌면 안철수는 정치권 밖에서 주저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 이 현상을 수용할 준비와 변화된 모습을 아직 갖추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권이 과연 그동안 자연인 안철수에 보내는 대중의 집단지능을 현실로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정치적 변화의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최근 미국의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시민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회자된다. 안철수를 통해 표출되는 집단지성의 요구를 정치권이 애써 외면한다면 대중은 앞으로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다. 안철수 본인 또한 마찬가지의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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