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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대 찌른 '전북펜싱', 그 뒤에 이상기 감독(익산시청) 있었다

제자 김지연, 女 펜싱사상 '첫 금' 꿈만 같아 / 선수 이어 지도자로 메달 획득 모든 것 이뤄 / 펜싱하는 아들, 올림픽무대서 금 따는게 꿈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익산시청 김지연(24·사브르)이 거둔 쾌거의 이면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상기(48) 익산시청 감독을 첫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다른 지도자들처럼 소속 선수의 경기를 보기위해 관전자 자격으로 올림픽 현장에 간 것이 아니고, 국가대표 펜싱팀 코치 자격으로 참가해 당당히 금맥캐기의 현장을 생생히 보고 느낀 사람이다.

 

선수시절 이상기 감독은 올림픽에 4회연속 참가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에빼 동메달을 따냈다.

 

이는 한국 올림픽 펜싱 사상 첫 메달로 기록됐고, 12년뒤 한국펜싱은 그가 놓았던 주춧돌을 발판삼아 전세계를 호령하는 최강자로 떠올랐다.

 

익산시청 펜싱선수 8명중 현재 4명이 국가대표로 활동중이고, 이중 김지연과 박경두가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기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과 펜싱계 안팎에 형성된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해 가능했다.

 

지난 2일 런던 엑셀 제1사우스 아레나에서 금메달을 따낸 직후 김지연은 감독인 이상기에게 뛰어왔다.

 

"감독님, 이거 꿈 아니죠?"

 

벌겋게 상기된 김지연은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익산시청팀에서도 에이스가 아닌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으니 그럴만도 했다.

 

"잘하면 동메달을 딸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던 선수다. 이 감독은 제자를 안아주면서 "꿈일지 모르니까 절대 잠들지 마" 하며 웃었다.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제자의 금메달 확보 장면에서 느꼈던 환희는 금방 고민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세계적인 선수가 됐는데 과연 우리 익산시청에 계속 몸담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번민이었다.

 

대기업 등에서 자치단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했을때 김지연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물음을 스스로 해봤다.

 

고교 졸업직후 계속 한솥밥을 먹었기에 김지연이 금메달 하나 땄다고 팀을 떠나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를 가만 놔두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귀국 직후 만난 전북펜싱협회장인 이한수 익산시장도 이 감독과 똑같은 고민을 토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감독은 확신을 굳혔다.

 

"어떤 일이 있어도 김지연은 제2의 고향인 익산시를 지킬 것이다."

 

그래서 이 감독은 선수들에 대한 대우를 좋게하고, 더욱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올인할 생각이다.

 

선수들보다 먼저 런던에서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이 감독은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지난해 3월 국가대표 코치를 맡은 이후 지금까지 가정을 잊고 살았다.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었다.

 

태릉 선수촌에서 새벽 6시부터 밤 9시30분까지 선수들과 함께 뒹굴고, 번민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국제대회 입상 점수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선수단을 이끌고 프랑스, 헝가리, 독일에서 6개월 넘게 보냈던 시간도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파란색 옷을 입어야만 승리한다'는 묘한 징크스 때문에 이번에도 이 감독의 속옷은 언제나 파란색 이었다.

 

"선수는 영광의 자리에 서게되지만 지도자는 묵묵히 무대 뒤에서 숨죽여 지켜볼 뿐이죠."

 

이 감독은 지금 이 순간부터 선수들이 게으름과 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16년 동안 국가대표를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겸허한 마음과 성실한 노력 때문이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김지연 역시 그래야 롱런할 수 있고, 또다른 성취가 가능할 것이다.

 

추락은 순간이다.

 

"선수로서 성취했고, 제자가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니 이젠 아무 욕심이 없다"는 그는 직접 요리를 만들어 가족에게 봉사하는 평범한 가장이 되고 싶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게 싫어서 이젠 절대 국가대표 감독은 맡지 않겠다"는 이상기.

 

그에게 가족과 관련한 소망을 물었다.

 

"행복이 항상 넘치는 가정을 만들었으면 좋겠고, 펜싱을 하고 있는 둘째 아들 주형(전북제일고)이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 감독은 "이번 런던에서의 쾌거를 계기로 침체에 빠진 도내 체육계가 살아나고, 전북의 체육인들이 존중받는 풍토가 형성됐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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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기 bkweegh@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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