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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심판 전영천, 또 다른 '런던의 영광'

런던올림픽 유도종목 국내 유일 참가…도내 첫 올림픽 심판 / "남자 헤비급 결승전 맡게 됐을 땐 온몸에 전율"

   
▲ 전영천 심판이 유도 마지막 날 남자헤비급 프랑스와 러시아 선수의 경기 주심을 보고 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비단 선수와 지도자만 활약한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심판들도 제몫을 톡톡히 해내며 한국의 성가를 국제무대에 널리 알렸다.

 

한국 심판중 런던올림픽에서 가장 돋보인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유도 전영천 심판(52·고창군청 감독·사진)이다.

 

전북 출신으로는 사상 최초로,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런던올림픽 유도 심판으로 활동한 그는 대회 기간 내내 흠잡을데 없는 공정하면서도 매끄러운 경기진행을 해 국제올림픽위원회나 국제유도인들로부터 Perfect (완벽한) 심판이란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유도의 경우 맨 마지막날 열리는 마지막 경기(지난 3일)는 헤비급(+100kg급) 결승전이어서 가장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 경기의 주심을 맡은 이가 바로 전영천 심판이다.

 

전북체고 1학년때 유도를 시작한 이래 유도인으로 살아오는 35년중 가장 영광스런 장면이 바로 그때였다고 한다.

 

런던에서 귀국한 전영천 심판을 만나 올림픽 심판으로 참가한 스토리를 들어봤다.

 

"결승전 경기가 열리기 불과 10여분 전에 제가 주심을 맡는다는 통보를 받고서는 망치로 머리를 한방 꽝 하고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심판으로서 가장 명예로운 자리에 설 수 있게된 때문이다.

 

이날을 위해 수십년동안 준비해온 나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대한민국 소속 40여명의 국제심판중 단 한명을 뽑는 어려운 경쟁을 이겨내고, 또다시 국제무대에서 경쟁을 거듭하면서 전세계에서 24명을 선정하는 올림픽 심판이 되기까지 고비고비가 너무 많았음은 물론이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약 2개월전부터 좋아하는 술을 끊다시피했다.

 

매일 새벽 전주시 진북동에 있는 집에서 치명자산 성지까지 올라가 체력단련을 하고, 몸을 날렵하게 하기 위해 체중도 5kg넘게 감량했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서도 한경기, 한경기 최선을 다해서 심판을 봤다.

 

유도는 주심 1명과 부심 2명이 진행하는데, 이들을 6명의 감독관이 지켜본다.

 

모든 경기는 비디오 분석을 통해 심판의 판단을 또한번 따진다.

 

오전 경기를 분석해서 오심을 한 심판은 오후 경기에서 제외된다.

 

점심이후 진행되는 준결승 때부터는 총 24명의 심판중 10명이 떨어져 나간다.

 

경기가 진행되는 도중 관중들은 모르지만, 심판의 손은 축축하게 젖을 수 밖에 없다. 경기마다 워낙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가장 비중있는 마지막날, 마지막 경기의 주심을 맡았다는 것은 국제심판중 1위로 평가받았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기존 경기에서 가장 완벽하게 심판을 본 사람만이 평가를 통해 결승전 주심을 맡게 된다.

 

어떤 경기에서는 심리적으로 한때 흔들리기도 했다.

 

일부 한국 선수단 사이에서는 한때 일본 선수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 심판으로 인해 한국 선수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오해가 확산된 때문이다.

 

전 심판도 대한민국 사람인지라 한때 번민이 있었지만, 심판 전영천은 끝내 공정하게 판정했다.

 

"관중석을 꽉 채운 5000여명의 관중과, 심판 감독관이 지켜보고, 무엇보다도 모든 지구촌 사람들이 지켜보는 데 공정성을 잃는다면 이는 대한민국 출신 심판으로서 부끄러운 일 이라는 판단을 한 거죠."

 

전 심판은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모든 대회가 끝나고 귀국길에 오르면서부터 심판 전영천은 자신이 유명해져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유도인들은 말할것도 없고, 일반인들이 자신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TV로 중계된 유도 경기에서 전영천 심판의 모습은 너무나 자주 목격됐다.

 

전주나 고창에서 사람들을 만날때면 그들이 달려와 반갑게 악수하면서 "유도에서 3번째 금메달을 딴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유도는 이번 대회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냈지만, 전영천 심판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금메달을 따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장수에서 태어나 전북체고, 용인대를 졸업한 그는 국가대표까지 지냈으나 갑작스런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중도에 접는 아픔을 겪었다.

 

선수로는 실패했지만 우석고·고창군청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뚜렷한 성적을 낸 그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결승 경기 주심을 맡는 행운을 안았다.

 

20여년 넘게 심판으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일화를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전영천 심판의 다음 목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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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기 bkweegh@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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