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연 임실초 교사
시인에게 가는 길은 반듯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보건소를 지나면 작은 돌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반듯하게만 나아가면 그가 살고 있는 오두막집이 나타난다. 노란색 장판 우의를 야무지게 뒤집어 쓴 '랄랄라'(시인의 오토바이)는 좀처럼 나돌아 다닐 일 없는 장마철이 지루한 듯 했고, 그 옆으로는 캠프파이어에 쓰일 장작들처럼 각 종 술병들이 가지런히 둘러쳐 있다. 풍경소리가 따랑따랑 울려 퍼진다.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인의 오두막을 조심스레 살핀다. 사방 어딜 둘러봐도 시(詩)다. 그가 유일한 욕심이라고 고백한 바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CD들이 품고 있는 선율들은 그의 귀를 지나 한 편의 시(詩)가 될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지리산 자락 역시 그의 눈을 통해 시(詩)로 매일 거듭난다.
쉬셔야 하는데 방해해서 죄송하다는 멋쩍은 인사에 온화한 꽃미소로 답한다. 문득 '꽃중년'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이런 경우를 자주 겪어 이력이 난 눈치다. 시인과 두 번 돌아 띠 동갑인 나는 더 황송해져 선생님 시가 참 좋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내가 꺼내든 시집에 그림을 그려주고 색을 덧입히고 짧은 시를 써주어 친필 사인을 마무리 한다. 받는 사람이 평생 기억하게 만들 저자 사인회다. 과연 버들치 시인이다.
-선생님,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너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어'와 '너는 지금 모습 이대로가 참 멋지고 이뻐' 중 어느 편에 서는 게 교사로서 옳은 선택일까요?
무한경쟁과 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나의 제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것이 교사로서 최선인지 그에게 물었다.
-그야 당연히 후자지요. 선생님이라면…….
단박 대답한다. 뭐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눈치다. 나는 약간 변명을 하고 싶어진다.
-저……그래도……요즘 세상이 세상인지라……애들이 너무 착하기만 하면 무시당하고 불행해질지도 몰라서…….
나는 더듬더듬 전자의 편에 서서 그의 말에 넌지시 반박해본다.
-결국은 다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우리가 할 일 이지요.
자발적 가난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의 말인지라 울림이 크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갈등 중이던 나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다. 책이 도끼가 아니라 시인이 도끼다.
시인과 함께 있는 동안 나는 내 집에 있는 듯 편안하였다. 단 한 순간도 의사소통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시인은 고요한 시간을 사랑하며 가꾸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저 나라는 사람을 꾸밈없이 지키며 앉아 있기만 하면 됐다. 자꾸 대화를 재촉하고 강요하며 공통점을 찾아내 소통하려 하는 여느 만남들과 많이 달랐다.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으며 잠에서 깨고 나면 하나도 기억 못 할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그는 오후에 할 일이 있다며 예의바르게 헤어질 순간을 알려주었다. 그 역시 거의 매일 해오던 일처럼 익숙했다. 그러기도 하겠지. 전국에서 그를 찾아오는 이 얼마나 많겠는가. 타고난 휴머니스트인 그는 또 얼마나 살갑게 그들을 맞이하겠는가.
-꽃잎을 보지 말고 꽃들이 지나온 시간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시를 쓸 수 있을 거예요.
시인이 꿈이라는 나에게 그는 화두 하나 던져주며 작별 인사를 가름한다.
악양 매화골을 넘어 집으로 오는 동안 시인이 선물해준 호두처럼 생긴 가래 두 개를 쓱쓱 문질러 본다. 따그락 거리면서 서로 몸을 부딪히는 소리가 온 몸의 감각을 곤두세운다. 이런 긴장으로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시가 많은 이의 일상에 샘물처럼 맑고 신선한 무언가를 선물해 주는 이유도 이 가래 소리 덕분이 아닌가 하며 혼자 웃는다.
앞으로 너는 어찌 살고 싶으냐는 막연한 질문을 듣는다면 나도 막연한 세 글자로 답하고 싶다.
박. 남. 준.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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