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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뒤돌아보라고…길이 순례자에게 말을 건넨다

이야기가 있는 순례길 - 가는 곳 마다 유서 깊은 성지 지친 몸 다독여주고 살풀이 춤·사물놀이…흥겨운 판은 덤으로

▲ 순례자들이 전주 치명자산 코스를 걷고 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14면에 이어

 

△ 사랑으로 신라와 백제를 화해시키다

 

다섯 째 순례길에는 나종우 원광대 교수와 지광 스님이 순례자들의 몸과 마음, 생각을 다독여준다. 순례길에 앞서 진신사리 이운 재현의식이 펼쳐지고 영산작법보존회에서 준비한 오방번 행렬과 지광 스님의 행렬 등이 이어진다. 적국인 신라의 공주인 선화를 아내로 삼은 무왕이 오늘 순례의 길동무다. 달큰한 마로 아이들을 꾀어 사랑노래 서동요를 부르게 한 그의 재치와 용기가 담긴 사랑놀이는 지금도 신선하다. 주왕마을, 연동마을, 구기마을, 천서마을은 호기로웠던 무왕이 다스리던 백제 땅이었다. 그 한가운데 선 왕궁오층석탑이 백제문화의 꽃인 양 아름답다.

 

만경강을 멀리 에돌아 끼고 갈대밭과 기러기가 쉬어가는 비비정, 그 옛날 포구였던 춘포가 다가온다. 조촐한 음식으로 배고픔을 해결하고 한걸음에 호남평야 한가운데를 흐르는 만경강의 배다리와 논두렁 흙길을 걸어 동정부부 이순이와 유항검의 이야기가 있는 초남이 성지에 도착한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퍼포먼스와 판소리가 초남이 성지를 소리물결로 채울 것이다.

 

△ 아, 처영대사여! 일천 의승병이여!

 

여섯 째 순례길에 접어든다. 초남이에서 아침을 먹고 백남운 목사의 걸음에 맞춰 콩쥐팥쥐마을을 지나면 곧장 금산사 쪽을 바라보고 내리 걷는다. 금산사 절집에서는 청소년 순례꾼들을 위해 파라미타 회원들이 기획한 처영대사와 일천 의승병을 추모하는 퍼포먼스와 페스티발이 기다린다. 원행스님의 환영 속에서 진국의 북소리를 비롯하여 살풀이춤, 사물놀이, 북춤과 군무 및 청소년들의 춤과 노래 등 흥겨운 판이 벌어진다. 늦은 밤 9시에 행사를 끝내고 금산사의 서전과 보제루, 설법전, 선방, 야영장을 비롯하여 지척에 있는 청룡사와 금산교회, 원평교당과 수류성당 등에 삼삼오오 흩어져 고단한 몸을 쉬게 된다.

 

△ 중생을 위해 풀잎처럼 목숨을 내놓다

 

일곱 째 날 이른 아침부터 점심나절까지 금산사 법회를 참가하고 절집 둘레를 소요한다. 원행스님의 인솔을 받으며 처영대사를 추억한다. 임진왜란 때 금산사 주지였던 처영대사가 일천 의승병을 모아 훈련시켜 행주산성과 이치제 싸움 등에서 승전고를 울리자 정유재란 때 왜군들이 금산사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때 일천 의승병이 티끌처럼 목숨을 바쳐 산화했다.

 

전날의 우렁우렁한 의승병들의 북소리와 군무의 여운이 휘도는 금산사 일주문을 나와 가까운 청룡사를 시작으로 대순진리회, 정여립 활동지, 동곡마을, 제비산, 증산법종교 등이 한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원평저수지 둘레길을 걷는다. 또 세 친구처럼 다정하게 이웃해 있는 원평교당, 원평성당, 원평교회도 찾아간다. 그리고 화율마을에 있는 115년의 믿음을 간직한 아름다운 수류성당에 다다른다.

 

△ 순례꾼들을 품에 안아 단련하다

 

여덟 째 순례길이다. 율치마을을 돌아 밤티재에 올라 다시 안덕 저수지로 향한다. 순례자 무리를 이끄는 큰 어른이 없는데다가 야트막한 산길이라고 만만한 길로 여기면 안 된다. 웃자란 사초들 사이로 조심성 없는 걸음을 떼다 보면 금방 숨이 턱에 찬다. 어미 품처럼 넓다고 함부로 뛰어들면 모악산은 돌연 엄한 어미가 되어 순례자들을 담금질하며 숨 고르는 법부터 가르친다. 그래서 아홉 순례길 가운데 가장 우습게 여기던 모악산의 품 안에서 순례꾼들은 대자연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믿음의 대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장파한지마을에서 안덕마을을 거쳐 구이저수지가 보이는 모악산 북쪽에서 다음날 마지막 순례를 기약하며 헤어진다.

 

△ 이 땅에 믿음의 홀씨가 되어 퍼져가다

 

순례의 마지막 날. 박진구 목사와 이병호 주교가 순례자 무리를 이끄는 목자가 되어 선교사들을 잊지 말자고 추억을 말해준다. 믿음의 홀씨가 되었던 선교사들 이야기가 발길 따라 흩날릴 것이다. 또 부활 리더 김태원이 무리에 섞여 자신의 순례체험을 곁들여 모든 우연한 사건들이 기적으로 바뀌기까지의 이야기도 바람결을 탄다.

 

모악산의 두방마을에서 반월에 접어들어 천변산책길에 들어서면 연이어 다리들이 나타난다. 원당교, 신평교, 삼천교, 우전교, 마전교 등이 휘도는 전주천에 얹혀 있다. 전주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서면 우리나라 천주교 순교 1번지로 이름을 올린 한옥마을 전동성당이다. 긴긴 순례의 여정이 끝나고 본래의 자리에 돌아온 것이다.

 

철학자 우나무노는 생각했다. 모든 종교의 모든 예배와 의식은 신이 깨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를 꿈꾸도록 하기 위한 방식은 아닐까, 하고. 순례길마다 수놓듯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걸어온 순례자라면 우나무노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아홉 순례길이야말로 신의 꿈결에 펼쳐진 아름다운 길임을.

 

/김정겸 문화전문시민(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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