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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종단의 향연…아홉가지 길에서 깨닫는 하나됨

아홉가지 길에서 깨닫는 하나됨4대 종단의 향연…'600리 구도' 전주서 출발

▲ 한국순례문화연구원과 천주교·원불교·기독교·불교 등 4대 종단 지도자·신도 등 2000여명은 1일 전주시 풍남문 광장에서 세계순례대회 개막식을 하고 도보 순례를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순례길 원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추성수기자 chss78@

온세상에 수많은 길들이 열리면서 성지순례의 길에 오르는 일도 세상구경이나 올레길 걷기만큼이나 수월해졌다. 그럼에도 다양한 종교인들이 손을 잡고 성지를 순례하는 일은 여전히 드문 일이다. 더군다나 종교 갈등으로 세계 곳곳에서 또 나라 안 방방곡곡에서 불화가 빚어지고 있는 오늘, 이웃종교인들이 함께 어깨를 겯고 이웃성지를 찾아 길 떠나는 일은 분명 귀한 일이다. 다양한 종교를 품어온 전북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 지극히 사적이고 생생한, 그러나 무한히 열려 있는 믿음의 세계

 

믿음은 지극히 사적이고 생생한 체험이자 공(空)의 세계다. 믿음을 붙잡았다고 믿는 순간 손에서 미끄러지듯 믿음의 끈을 놓치기가 얼마나 쉬운지. 오늘날은 믿음의 촛불을 켜두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부귀와 구원이라는 유혹적인 거래에 매달리고 종교적 독선을 버리지 못하며, 자신의 믿음은 비판의 과녁이 되지 않으려 하고 이웃종교에 대해서는 아예 빗장을 닫아버려, 우리의 믿음은 불관용의 안개가 짙다. 그런 탓에 이번 세계순례대회는 참으로 반갑다. 저마다 신비하고 생생한 믿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슬한 순례가 될 것임이 짐작되는 까닭이다.

 

9가지 색색의 순례길마다 종단의 큰 어른들이 동행하며 순례꾼들에게 신비하고 그윽한 믿음의 길로 안내한다.

 

순례꾼들은 큰 어른들의 곁을 따르며 이웃종교에 배움의 귀를 다소곳이 열어놓기만 하면 된다. 그분들의 말씀을 여겨듣고 행여 알고자 하는 것이 마음에 생기면 스스럼없이 질문을 하면서 의혹을 여의어가는 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차츰 종교적 오만과 비관, 냉소를 걷어내다 보면 자칫 꺼뜨리기 쉬운 믿음의 촛불도 환해지지 않을까. 평화와 자비가 깃든 순례길은 믿음을 갖지 않은 이들을 더욱 반길 것은 당연하다. 이를테면 그들도 인생의 미로를 헤매며 진리를 찾는 순례꾼들이 분명하므로.

 

지금은 아홉 순례길마다 종단의 어떤 큰 어른이 동행하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어떤 행사가 치러지는지, 어떤 길 위를 걷는지를 미리 살펴서 놓쳐선 안 될 순례코스에 마음의 점을 찍어보는 것이 좋겠다.

 

△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

 

11월 첫날 첫 순례길은 소태산 대종사를 기억하는 원불교의 날. 원불교전북교구장 고원선 교무가 순례여정에 합류하여 소태산 대종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구도를 향한 고행을 20여년 행하던 소태산 대종사는 1916년 26세에 새벽 동녘하늘이 밝아오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홀연 우주와 삶의 진리를 크게 깨우치고 원불교를 열었다.

 

후천개벽의 부처로, 평범한 성자로 불렸던 그는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사자후로, 일제강점기의 구태의연한 믿음과 지리멸렬한 생활을 일신시켜 둥근 환희심을 일깨웠다.

 

한옥마을에서 첫발을 내딛은 순례자들은 치명자산, 남고산성, 월암마을을 거쳐 의암마을의 아름드리 벚나무 터널을 지나 송광사에 당도하여 첫 순례를 마친다. 절집 안마당에는 65리의 긴 여정으로 고단한 순례꾼들을 맞이하는 퍼포먼스와 예식, 따끈한 전통차와 정갈한 사찰음식으로 준비한 저녁공양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낮은 자세로 섬김을 상징하는 발씻김 예식을 통해 순례꾼들은 하루의 노고를 개운히 씻어내고 극진한 환대와 축복을 받는다.

 

 

 

△ 불교의 호국정신으로 중생을 건지다

 

둘째 날 순례길은 벽암대사를 추억하는 날. 금산사 회주 도영 큰스님이 앞장선다. 그 길 위에서 큰스님은 벽암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끊임없이 외적의 침입을 당했던 우리 역사에서 불교는 호국정신으로 무장해야만 했다. 중생이 그들이 사는 땅에서 깨달음을 얻어 구원을 얻으려면 먼저 세상을 전란으로부터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불교가 배척을 받던 조선시대에도 벽암대사는 남한산성을 쌓아 전란을 대비하고 병자호란의 위기 속에서도 불가의 법도를 지키며 중생을 구했다.

 

순례자 무리는 종남산 송광사에서 봉서사, 위봉사로 오르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와 독촉골 다리를 건너고 고산의 천변으로 한걸음씩 나아간다. 어우리 논밭을 가로질러 내월마을과 명곡마을을 지나면 마침내 천호성지다. 이른 아침에 절집에서 집착을 버리라는 지혜의 말씀을 새겨듣고 출발한 순례의 끝에는 고요가 깃든 성당에서 순한 미소로 반겨주는 성모를 만난다. 순례자의 집에서 소박한 저녁식사를 하고 부활성당에서 기도와 묵상을 하며 순례를 끝낸다.

 

△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려 한다

 

셋째 날은 김대건 신부를 돌아보며 길 나선다. 이영춘 신부(천주교주교회의 문화위원회 총무)가 함께하며 첫 조선인 목자인 김대건 신부를 순례자들 마음에 데려놓는다.

 

그는 겨레의 영혼을 구하려는 소망을 품고 16살에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9년만인 1845년에 사제의 서품을 받고 박해받는 영혼들을 돌보기 위해 고국에 돌아왔다. 나바위에 상륙하여 이듬해 25세의 푸르른 나이에 순교하기까지 김대건 신부의 행적은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다. 새남터에서 순명하던 순간 그가 외쳤다.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천주를 믿으시오." 나바위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순정한 믿음과 영원한 생명의 숨결이 가득하다.

 

세 번째 순례코스의 목적지인 나바위에 당도하기 전에 여산의 향교와 동헌, 교당과 성당이 나란히 서 있고 두여마을, 관산마을, 채운마을이 늘어서 있다. 순례길 초엽 문드러미재 너머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와 여산에 표옹 송영구 선생의 망모당 정자가 숨어 있다. 좀 더뎌도 두 선생에게 얽힌 흥미진진한 실화와 올곧은 선비정신을 귀동냥하면 어떨까.

 

△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다

 

넷째 날 순례길은 '길 걷기 마니아'로 통하는 이상원의 길안내를 받는다. 북쪽 바라기를 하며 걸어온 길은 이제 몸을 틀어 금강을 따라 남쪽으로 휘휘 내려간다.

 

나바위 성지에서 나와 걷다보면 샛강마다 용성교 교향교, 용기교, 구평교, 중리교, 성남교, 죽청교 등 다리들이 걸려 있다. 여기는 허균의 삶과 사상을 보듬고 걸어야 한다. 허균이 누구인가. 그는 홍길동을 내세워 의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의 천재였다. 매창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친교했으며, 유교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 서학 등 당대의 거의 모든 믿음과 사상에서 자유로웠다. 함열은 역적으로 지목받은 그가 유배되었던 곳.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태봉사, 석불사, 삼곡사, 신곡사 등 작은 절집들이 하나둘 마중 나오고 이어 미륵사지의 웅장한 자태가 드러난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러졌던 석탑이 천년의 비밀을 밝히며 일어서고 서동과 선화의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15면에 계속

 

김정겸 문화전문시민기자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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