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12:57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주말 chevron_right 행복한 금토일
일반기사

전북의 향, 김장 - 숙성의 기다림…건강한 겨울밥상

천연재료·양념 어우러져 발효, 신선·오묘한 맛…지역별 종류 다양…성인병 예방·항암 효과도

▲ 지난해 전주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KBS 이웃사랑 6만포기 배추나누기 김장축제에서 13개 봉사단체 5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김치를 버무리고 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배추가 어찌 요렇게 크대." "배추 한포기도 못 들것네."

 

"아이고, 나도 젊어서는 무거운 것도 잘 들었는디"

 

김장을 담그려 하면 어머니들은 지나간 세월을 원망한다. 배추 실은 리어카가 지나갈 때 검둥이, 살랑이, 메리할 것 없이 짖어댄다. 배추 300 포기, 꼬들빼기, 알타리무, 갓김치, 들깻잎 김치, 고춧잎김치 등 김치 종류만 해도 대여섯 가지나 되지만 모처럼 동네가 품앗이 김장하느라 활기차다.

 

김장철이 다가온다. 김장은 가정마다 주부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큰 행사다. 김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부식물의 하나로 음식 중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김치 없는 식탁은 생각할 수 없다. 김치와 일본의 오싱꼬를 비교하면, 같은 배추를 절여 만들지만 김치는 고추와 마늘 등 벌겋게 담가져도 배춧잎이 싱싱한데 비해 일본의 오싱꼬는 풀이 죽어있다. 음식에도 민족성 차이가 담긴 것 같다.

 

삼국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은 김치. 그 중에서도 담백하고 감칠맛이 일품인 전라도 김치. 양념이 과한 남도, 약간 부족한 위쪽 지방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적당히 넣고 적당히 버무린' 그러나 맛은 일품인 김치. 치솟은 양념값 때문에 배추 절이는 손목이 아리지만 긴 겨울밤 찐 고구마 위에 얹어 먹는 김치 한 조각 생각에 우리네 엄마들은 힘을 낸다.

 

△ 김치의 역사

 

김치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약 3000 년 전의 중국 문헌 '시경'(詩經)이며, 오이를 이용한 채소절임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菹)라는 글자가 나온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서 김치담그기를 '감지'(監漬)라고 했고, 1600년대 말엽의 요리서인 '주방문'(酒方文)에서는 김치를 '지히'(沈菜)라 했다. 지히가 '팀채'가 되고 다시 '딤채'로 변하고 '딤채'는 구개음화하여 '짐채'가 되었으며, 다시 구개음화의 역현상이 일어나서 '김채'로 변하여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이다. 1715년 홍만선의 '산림경제'에서는 지히와 저(菹)를 합하여 침저(沈菹)라 했고, 지금도 남부지방 특히 전라도지방에서는 고려시대의 명칭을 따서 보통의 김치를 지(漬)라고 한다. 그리고 무와 배추를 양념하지 않고 통으로 소금에 절여서 묵혀두고 먹는 김치를 '짠지'라고 하는데 황해도와 함남지방에서는 보통 김치 자체를 '짠지'라고 한다.

 

현재는 배추김치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00년대 전까지만 해도 김치의 주재료는 무였으며, 20세기에 들어 중국의 산동에서 배추가 수입된 후부터 배추김치가 널리 보급되었다. 17세기 이전에는 고추가 없었기 때문에 고추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 고추를 들여오면서 사용하였는데, 고추를 양념으로 쓰면 사용되는 소금의 양이 줄어든다. '임원십육지'에서 서유구는 고추를 김치에 많이 쓰면 무가 더 오랫동안 저장된다고 기술하였다. 고추는 부패를 더디게 하여 고추를 많이 넣으면 옅은 소금물에 절여도 김치 맛이 오래 간다. 또한 고추의 자극적인 맛은 소금만큼 식욕을 자극하고 탄수화물의 소화를 촉진시킨다.

 

▲ 지난해 전주시 새마을회가 전주 종합경기장에서 소외된 이웃 1000세대에 전달할 김장 김치를 담그고 있는 모습.

△ 어우러짐과 기다림의 상징, 김치

 

미국의 건강전문지인 '헬스'는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 중 하나로 꼽았다. 비타민(B1·B2·C)과 미네랄 등이 풍부하다는 것. 한 때 전 세계적으로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과 AI(조류 인플루엔자)가 유행할 때 예방에 김치가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나와 탁월한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에서 항암성이 있다고 증명된 바는 없으나, 동물 실험에서는 일부 암을 예방하고 발병률을 낮춘다는 보고가 있었다.

 

김치의 가장 큰 장점은 잘 익었을 때 코끝을 톡 쏘는 맛이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해준다는 것이다. 젓갈로 인해 김치가 익어가는 과정에서 탄산이 생기고,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맛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숨 쉬는 옹기에 보관하곤 했다. 김치는 여러 재료들이 적당히 어우러져 발효(숙성)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어느 재료 하나 튀지 않고 한 데 어우러져 김치 특유의 독특하고도 신선한 맛이 나는 것.

 

서울, 경기 지방은 밭·논농사가 발달해 풍부한 재료를 사용한 다양한 김치가 이어져 내려온다. 국물이 많거나 뻑뻑하거나,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서해의 해산물과 동쪽 산간지방 산채가 어우러져 맛과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충청 지역은 경기 지방과 비슷하나 소박하며 양념도 적게 사용해 맛이 순한 편이다. 반면 전라도는 다른 지방보다 풍부한 곡식과 해산물, 산채를 이용해 음식이 매우 호화로우며, 정성을 들여 다양한 김치를 담그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후가 따뜻해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맵고 짠 편이지만 찹쌀풀을 넣어 국물이 진하고 감칠맛이 나는 것이 특징. 경상도는 젓갈, 마늘, 고춧가루 등 양념을 많이 사용해 맵고 짠맛이 강하면서 국물은 거의 없다.

 

△ 젓갈 향 풍부한 부안 김치

 

배추포기김치, 고들빼기김치, 갓김치, 전라반지, 나주 동치미 등이 유명하다. 부안에선 옛부터 김치를 할 때 바닷물로 씻는다. 바닷물로 씻는 과정에서 채소가 숨이 죽으면서 간이 되고 또 바닷물의 미네랄이 스며 들어 영양적으로도 더 좋아진다. 변산반도 남쪽의 곰소항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동네, 곰소리는 11월 소금 농사가 끝이 나면 김장을 한다. 김장에 쓰이는 소금은 인근에 위치한 곰소염전에서 최소한 2년 이상 묵혀 간수를 뺀 소금을 받아 쓴다. 곰소소금은 특히 염도가 낮아 쓴맛, 떫은맛이 없고 오히려 뒷맛이 달짝지근하기 때문에 젓갈 담그는 데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곰소 젓갈 맛이 좋은 것도 곰소소금이 좋기 때문이다. 김치를 위해서는 3년 정도 숙성시킨 천일염이 최고. 1년 된 소금은 젓갈에, 3년 된 소금은 김장에, 5년 된 소금은 약이 된다는 말이 있다. 소금만 오래 묵은 것을 쓰는 게 아니라 젓갈도 그렇다. 좋은 바다는 좋은 소금을 낳고 좋은 소금은 좋은 젓갈을 낳는다. 곰소 젓갈 가운데서도 새우젓과 멸치액젓, 까나리 액젓, 갈치속 액젓, 가자미 액젓 같은 액젓은 곰소염전에서 나는 천일염으로 2~3년 숙성시켜 깊은 맛이 난다. 그밖에 밴댕이젓, 황석어젓 등 액젓 종류까지 합해서 40여 가지의 다양한 젓갈들이 있다. 김치를 담그려면 액젓을 그냥 쓰기도 하고 끓여서 사용하기도 한다. 보통 새우젓을 제외한 여러 젓갈을 섞어 젓국을 끓인 다음 이를 체에 거른 후 식힌다. 이후 돌절구에 고추와 마늘을 넣고 짓이겨 젓국을 조금씩 부어 액젓맛이 고추에 배게 한다. 여기에 찹쌀풀과 준비한 채소, 새우젓 등을 섞으면 김치 양념이 완성된다.

 

▲ 김진아 문화전문시민기자

김진아 문화전문시민기자

 

(익산문화재단 문화예술국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