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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선생은 진정한 민주주의자였다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온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상징인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서거 1주기를 앞두고 그제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재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는 한반도재단, 로버트 케네디인권재단 그리고 지난 9월 개소한 우석대 김근태 민주주의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 고인이 남긴 평화, 정의, 지혜를 다시금 되새겼다.

 

민주화 운동의 큰별이었던 김 고문은 고문 후유증과 뇌정맥혈전증으로 투병하는 동안에도 본인의 고통은 감추면서 민주화와 남북통일 위해 헌신했다. 그가 유훈처럼 남긴 '2012년을 점령하라'는 제목으로 남긴 글이 대선을 앞두고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고인은 1965년 한·일 굴욕외교 반대시위 참여 이후 생을 마감하기까지 46년간 한국 민주주의 최일선에 서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바친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며 "2012년 대선 승리는 고인이 평소 주장했던 '민주대연합'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 교수는 '김근태와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김 고문의 동북아 평화구상을 설명했고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에 일관된 전략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자나 토론자들은 김 고문이 남긴 업적을 회고하면서 "김고문은 진정한 민주주의자였다"고 추모했다. 독재타도 운동의 선봉에 섰던 김 고문은 지난 1985년 9월4일 구류에서 풀려나 서울 서부경찰서를 나오던 중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9월25일까지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으로부터 물고문 전기고문 폭력행위 잠고문 등을 10여차례나 당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을 잃었지만 가해자를 진정으로 용서하는 모습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원칙을 중시하고 품위를 지킬 줄 알며 무엇보다 진정성을 간직해온 그는 열린우리당 시절 '아파트 분영원가' 공개와 관련해서는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노 전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고 모두가 검찰 눈치를 살필 때 홀로 개인 성명을 발표, 노 대통령의 손을 잡아준 것은 그가 아니면 아무도 못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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