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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가람 시조마을 차질없이 완공하라

익산시가 국문학자이자 시조 시인인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 마을인 여산면 원수리에 시조 문학관을 건립하고 난초공원을 조성하겠다며 예산을 편성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이번 예산은 가람 시조마을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비 1억 원에 불과하다. 이후 68억 원을 들여 2016년까지 시조 문학관과 난초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익산시의 가람 관련 시각은 의심이 있다. 서정주와 채만식의 경우 고창군과 군산시가 일찌감치 문학관 등을 건립, 지역의 자랑거리로 삼아왔다. 서정주와 채만식은 친일 행적이 있다 하여 국민적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도 불구, 고향 사람들은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기념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익산이 낳은 최고의 국문학자이자 시조 시인으로서 우리 국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이병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우리말 지킴이로서 온몸을 던진 애국인이자 지성인 이병기에 대해 익산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현재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돼 있다. 익산시는 그동안 가람의 생가 수우재(守愚齋)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건물이 훼손되고 잡초가 무성, 관광객과 언론 등의 질타가 많았다. 관리 편익을 내세워 초가지붕에 짚이 아닌 억새를 사용, 원형 보존도 외면했다. 이 때문에 가람을 제대로 대접하라는 질타, 권유도 많았다.

 

익산시가 뒤늦게나마 가람 선생의 업적을 기리겠다며 예산을 편성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물론 사업이 완성되면 죽은 가람이 훌륭한 '관광자원'이 돼 익산에 많은 것을 돌려줄 것이 뻔하다.

 

1891년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난 가람은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국문법을 배웠고, 한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921년에 조선어문회를, 1926년에 시조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1930년대 말 시인 정지용과 함께 '문장'을 주재하며 창작 시조집 '가람 시조집'을 발간했다. 그의 시조 '난초'는 현대 시조의 전형으로 널리 사랑 받았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가람은 1956년 전북대에서 정년한 후 1957년 '우리말 큰사전'발간에 큰 힘을 쏟았고, 이를 기념한 한글날 행사에서 마신 술 때문에 쓰러져 1968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국어와 국문학을 위해 한평생을 살았다. 가람 시조마을이 차질없이 완공되도록 전북도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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