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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수 시인이 본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 - 친일행위 반성한 자전소설

항일투쟁하지 않은 자는 민족의 죄인…과거 통해 미래사회 볼 수 있어

우리 전북에는 몇 개의 문학관이 있다. 그중에서 미당시문학관과 채만식문학관은 친일이라는 덫에 걸리어 문학관이 지니는 순수한 기능과 역할을 다 하기에는 많은 장애가 있다.

 

미당시문학관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친일시도 함께 걸리어 방문객들에게 역사의 준엄함을 깨닫게 하고 미래의 삶의 지표를 암시해준다. 그러나 채만식문학관은 그분의 친일행적을 나타내는 글이나 저서가 전시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광복 후에 쓰인 '민족의 죄인'이라는 글이 그분의 양심고백이며 문학인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 진실된 모습이라며 면죄부를 주려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세상에 나온 그분의 친일작품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고장의 소설가 채만식을 〈책과 만나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1946년에 쓴 『민족의 죄인』은 채만식의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그는 친일활동으로 말미암아 해방 후 고뇌에 빠졌고, 그래서 스스로 '민족의 죄인'이라 여기고 글을 쓴 것이다.

 

이러한 죄의식은 우리민족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처벌 이전에 지은 죄를 스스로 반성한다는 것은 도덕적 순결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다. 대부분의 친일 작가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은폐하기에 급급했을 당시, 채만식은 자신의 행위를 전면적으로 반성하면서 친일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민족의 죄인'은 우리 문학사에서 친일행위에 대한 유일한 자기반성이자 문제 제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설의 장면 중에 작중화자인 '나'의 참회가 나온다. 먹고살기 위하여 대일협력을 한, 대일협력 딱지를 뗄 수 없는 자신을 창녀에 비유하였다. 한 번 몸을 망친 여자는 집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숫처녀가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다음의 독백은 바로 이러한 심회를 절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아무리 정강이께서 도피하여 나왔다고 하더라도 한 번 살에 묻은 대일협력의 불결한 진흙은 나의 두 다리에 신겨진 불멸의 고무장화였다. 씻어도 깎아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죄의 표식'이었다. 창녀가 가정으로 돌아왔다고 그의 생리(生理)가 숫처녀로 환원되어지는 법은 절대로 없듯이.

 

이런 아픈 참회를 하면서도 채만식은 소설의 중심인물인 김군의 입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신문기자가 신문을 맨드는 건 대일협력이고 농민이 농사해서 왜놈과 왜놈의 병정이 배불리 먹구 전쟁을 하게 하게 한 건 대일협력이 아닌가?" 하고 반문함으로써, 우리민족 전부가 어떤 점에서 본다면 모두 친일에 협조한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해서 '민족의 죄인'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결과적으로 친일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하는 질문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하는 암시로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죄인'이란 제목은 적극적으로 항일투쟁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죄인'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말하였다. 이는 역사란 항상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쓰여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 일제 식민지 시대는 현재적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으며 친일행위에 대한 우리의 해석과 판단도 그런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역사의식이 의미를 갖는 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의 교훈을 얻을 수 있고 미래사회를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의식의 중심은 항상 현재에 놓이게 된다. 우리는 현재 사회의 문제점이 왜 발생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를 과거를 통해 알고 미래사회의 전망을 통하여 오늘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야 할 것이다.

 

인간 채만식이라는 작가를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며 그의 자전소설 '민족의 죄인'을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읽어야 할 것인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스스로 결정지어야 할 것이다. 음지를 덮어둔다고 싹이 나는 것은 아니다. 덮으면 독버섯이 돋는 것이 자연의 생태다. 덮은 장애물을 활짝 걷어버리고 세상으로 나와 햇볕을 쪼여야 생명은 태어난다. '민족의 죄인'이라는 굴레를 덧씌우는 것도, 벗기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긴 겨울밤 우리고장의 작가 채만식을 만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일 것이다.

 

△ 정군수 시인은 현재 전북문인협회 회장으로 전북문단을 이끌고 있다. 전북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 전담교수·전주교도소 독서동아리 지도교수·혼불정신선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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