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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 행정 아쉽다

안봉호 군산본부장

수십년 전 국내를 떠들썩하게 한 토막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죄수는 다름아닌 6.25전쟁 때 많은 전공을 세워 당시 무공훈장까지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적을 죽여야 했고, 전우가 적의 총을 맞고 쓰러졌을 때 격분한 나머지 적군을 토막내 무참하게 살해하는 전쟁의 극한 상황속에서 2년여의 세월을 지내야 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그는 부상을 입고 군(軍)을 떠나야 했고 그후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와 있을 때 좋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다.

 

한밤중 조그만 시비끝에 느닷없이 상대편이 그의 빰을 때리는 상황이 발생했고, 그러자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그는 무의식적으로 전쟁상황속으로 빠져 들어 마치 적을 죽였을 때처럼 상대를 토막내 호수에 버렸다. 이 사건을 놓고 당시 언론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며 떠들어 댔고 무공훈장을 받은 그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교도소에서 이 죄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한 교도관은 그의 저서 '형무소의 멜로디'라는 책자를 통해 평소 순진하고 법 없이도 살 수 있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였던 한 죄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소개하면서 '당신이 그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독자에 던졌다. 많은 독자들은 그 질문에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나 자신도 그랬을 것'이라고 답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사자성어가 있다. 이 말은 사서삼경중 하나인 맹자(孟子)의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 )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처지를 바꾼다해도 모두 그렇다'는 뜻이다.역지사지를 직역하면 '처지를 바꾸어서 그것을 생각하라'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매사를 헤아려 보라는 의미다.

 

민원행정의 현장에 가보면 '민원인의 입장에 서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 온다. '민원인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민원을 처리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으로 역지사지의 의미가 깊숙히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선 민원행정의 현장은 그렇지 않다.

 

비안도 주민들이 도선이 없어 십수년간 위험을 무릅쓰며 어선을 이용하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여전히 행정구역의 논란에 휩쓸려 해결책이 도출되지 않고 있다.

 

산업단지에 다른 기업보다 먼저 입주했더니 폐수종말처리장의 운영비용을 원인자 부담원칙이라며 터무니없는 폐수처리비용을 부담시켜 기업들이 수년간 원가부담으로 많은 고충을 겪고 있어도 행정은 해결책을 제시치 않고 있다.

 

국정과 도정및 시정을 펼치고 있는 많은 공무원들이 '비안도 주민들과 산단내 입주기업의 고통과 고충이 나 자신의 고통이고 고충'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든 난리법석을 떨어 빠른 시일내에 해결책을 찾았을 것이다.

 

모든 법규정에 소위'회색지대'라는 게 있다. '이렇게 해석해도 그만, 저렇게 해석해도 그만'인 그야말로 애매모호한 규정들을 말한다.

 

'민원인의 고통과 고충은 나와는 상관없다'는 소극적인 자세로 대다수 공무원들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회색지대의 규정을 해석하고 있다.

 

이래서는 도민들과 시민들은 행정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어 지역발전을 위한 행정은 항상 저 멀리에 있을 뿐이다.

 

한 교도관이 질문을 던지고 많은 독자들이 답을 했던 것과 같이 국정과 도정및 시정에 역지사지의 행정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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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호 ahnbh@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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