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상황은 모두 다른 것 같지만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우주 전체가 우리에게 주는 은혜, 그 은혜에 대한 감사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아이들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 그리고 삶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
몇 해 전 군부대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었다. 정말 그 병사가 처한 상황이 생명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운 것이었을까? 정말 그 안에서는 어떠한 기쁨, 희망, 은혜, 감사의 요소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일까? 혹 그러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찾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도 파키스탄 북부 히말라야의 베이스캠프에서 무장괴한이 총을 난사해 관광객 등 11명이 숨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방송을 보며 나의 뇌리를 강하게 울리는 경종의 소리, 그것은 다름 아닌 대종사님께서 "일상수행의 요법으로 대조하라"하신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라는 깨달음의 소리였다. 그냥 일상적인 생활표어처럼 여기던 말씀이 오묘한 철학과 깊은 진리를 머금은 각자(覺者)의 성음으로 다가왔다.
감사는 단순히 고상한 인격을 반영하는 행동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삶을 보다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들며, 영생을 영혼의 생명력으로 가득 채워 줄 힘이 있다. 그렇다면 진정 나는 내 삶에서 감사의 요소를 발견하고 있는가? 진정 나는 내게 다가오는 수많은 인연의 씨앗에게 감사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가? 나는 내 마음 속에 수없이 많은 총알을 난사하거나, 장기 하나 하나에 수류탄을 던지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
지금 인연의 책장을 넘기며 한 줄 한 줄 더듬어 본다. 은혜의 기운을 가득 보내주시는 교도님들! 속세의 나이를 잊으시고 젊은 나보다 더 좋은 체력으로 함께 운동을 하시는 교무님들! 아침마다 행복한 몸짓을 보여주는 어린 부처님들! 인터넷 작은 공간에 반가운 흔적을 남겨주는 소중한 도반들! 그리고 내 안에 함께 하시는 사은님!
모두가 감사의 힘이 되어준다. 그러나 내 안의 부정적인 믿음들은 이러한 감사를 발견하지 못하게 한다. 어릴 적 폐 하나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은 후 난 열정이 필요할 때마다 육체의 아픔을 핑계로 스스로 제동을 걸곤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과거보다, 미래보다 지금 여기서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파동을 지니고 있는지… 그래서 난 등반할 기회가 생기면 남들보다 더욱 힘을 내서 앞장서 간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발과 쿵쾅쿵쾅 뛰는 심장에게 감사의 에너지를 보낸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 들거나 두려움이 쌓일 때, 결정이 망설여질 때,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진솔하게 고백할 대상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내게 다가오는 수많은 인연들에게 나는 어떠한 멘토링을 해줄 수 있을까?
"깨달음의 샘물에는 쉼표가 없다."
쉼 없이 정진하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경계마다 마치 새로운 인연을 처음 만나는 마음으로, 첫사랑을 시작하는 가슴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감사심으로 맞이하리라 오늘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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