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 범행·피해 여성 임신여부 불확실한데 브리핑·현장검증·서장 직위해제는 일사천리
10일 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군산 40대 여성 실종 사건'은 치정 관계에 의한 살인 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그동안 실종자와 용의자의 행방이 드러나지 않아 수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던 이 사건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군산경찰서 소속 경사 정완근씨(40)가 이달 2일 충남 논산에서 검거되면서 일단락 됐다.
그러나 정씨의 검거로, 그동안의 도주경로 등이 밝혀지면서 경찰 수사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정씨가 검거된 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경찰의 브리핑과 현장검증, 경찰서장 직위해제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사태 수습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용의자 검거= 지난달 24일 발생한 '군산 40대 여성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군산경찰서 소속 경사 정씨(40)가 사건 발생 열흘 만인 이달 2일 충남 논산에서 붙잡혔다.
논산경찰서는 이날 오후 6시 32분께 논산시 취암동의 한 PC방에서 정씨를 검거했다.
당시 비번이었던 충남 부여경찰서 소속 한 경찰관이 PC방에 들어가던 정씨를 발견하고 논산경찰서에 신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들과 함께 정씨를 붙잡았다. 검거 당시 정씨는 PC방 컴퓨터로 언론의 기사를 검색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주 경로= 정씨는 1차 경찰 조사를 받은 뒤인 지난달 26일 새벽 0시 10분께 경찰서를 나와 곧바로 강원도 영월로 달아났다. 이후 정씨는 충북 제천과 대전, 전주를 거쳐 군산 대야로 들어왔다. 26일 오후 8시께 대야에서 택시를 이용해 회현면 월연마을로 이동한 정씨는 시신을 유기한 장소에 들러 버려져있던 이씨의 옷을 대야 소재지에서 500여m 떨어진 농로에 버린 뒤 이날 밤 11시 15분께 군산 대야터미널로 이동했다. 이후 걸어서 다음날인 27일 익산 목천동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이날 새벽 5시 40분께 전주로 넘어 왔다.
전주의 한 여인숙에서 2일을 보낸 정씨는 자전거를 구입해 도주를 계획했고, 29일 자전거를 타고 전주를 벗어나 충남 강경을 거쳐 논산으로 도주했다. 그는 논산의 여인숙에서 4일 동안 숨어 지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동기= 피의자 정씨는 불륜 사실이 알려져 가정이 깨질 것을 두려워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6월 말 이씨와 한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 이씨는 "임신을 했다"고 알려왔고, 정씨는 지난달 24일 이씨를 만나 합의금을 주고 관계를 정리하려 했다.
정씨의 진술에 따르면 정씨는 이씨에게 "300만원을 줄 테니 그만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이씨는 "금액이 너무 적다"며 이를 거절했다. 이어 이씨가 "부인에게 불륜 사실을 알리겠다"며 정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으려 했고 이 과정에서 이씨가 정씨의 얼굴을 할퀴었다. 화가 난 정씨는 이씨를 목 졸라 살해했고, 시신을 유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의 진술 등으로 미뤄 차 안에서 다투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말했다.
△임신 여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이씨의 임신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국과수의 부검 결과 태아가 형성된 흔적은 없었고 시신의 부패 상태가 심해 임신 초기 단계인지도 밝혀낼 수 없었다"며 임신 여부를 밝히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씨의 임신 사실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임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찰이 이씨의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문자메시지 등을 확인한 결과, 이씨가 실종되기 전 임신을 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지인과 주고받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에 '7월 11일에 생리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이씨 유족들은 "경찰이 이번 사건을 '우발적 범행'으로 몰아가고, 마치 언니가 거짓 임신을 한 것처럼 발표한 것 아니냐"며 경찰에 항의했다.
△허술한 수사= 정씨가 이씨의 시신을 유기한 장소는 군산시 회현면의 한 폐창고 인근이다. 경찰은 시신 유기 장소 주변을 탐지견까지 동원해 집중 수색했었다. 경찰은 지난달 27일부터 군산시 대야면 일원을 정씨 검거 당일까지 1일 1000여명 이상의 경찰력을 투입하는 등 수색을 벌였다. 그러나 경찰은 실종자의 생사는 물론 실종사건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군산 대야면의 한 농로에서 발견된 이씨의 옷가지도 시민의 신고로 발견했을 뿐이다.
또 경찰이 대야면 일대를 수색할 당시, 정씨는 이미 군산을 벗어나 전주와 논산으로 도주한 후여서 뒷북만 친 꼴이 됐다.
△석연치 않은 경찰= 이 사건과 관련, 경찰은 정씨가 검거된 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건 브리핑과 현장검증, 서장 직위해제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정씨가 검거 당일 군산서로 압송된 시각은 2일 오후 8시 40분께. 당시 정씨는 진술을 하지 않았고, 이날 밤 11시께 최종선 전 군산서장(총경)과 면담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조사는 1시간여 동안 진행되다 마무리 됐고, 다음날 오전 9시부터 경찰은 조사를 재개했다.
사건 브리핑이 다음날인 3일 오후 3시로 예정돼 있어 경찰이 5시간 정도 정씨를 조사한 뒤 급하게 브리핑에 나선 것. 브리핑에서는 경찰의 답변이 앞뒤가 맞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기자들의 질문에 "확인되지 않았다", "모르겠다"는 답이 다수였다.
브리핑은 30분 만에 끝났고, 곧바로 오후 4시께부터 현장검증이 진행됐다. 현장검증은 혐의에 대한 조사를 다 마치고 증거확보 등을 위해 진행되는 마무리 단계이기 때문에 이번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현장검증 시간도 50분이 채 안 걸렸다.
브리핑에 앞서 경찰청은 지휘책임을 물어 최종선 군산서장을 직위해제했다.
이로써 사건은 정씨가 검거된 지 23시간여 만에 마무리됐다.
군산 이일권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