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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별

▲ 정영철 전북대 의대 교수
킬리만자로 산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5895m의 산으로 오대륙 최고봉 중 아마추어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말로만 듣던 이 산을 이번 여름 휴가기간에 다녀올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 3명의 의대 교수와 다른 지인들을 포함해 13명이 10박 12일의 여정으로 다녀왔고 이중 산에 있었던 시간은 5박 6일이었다. 버프, 스페츠, 오버트라우저 등 생소한 등반 준비물들을 꼼꼼히 챙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카타르 항공편을 이용해 17시간여만에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했다. 천천히만 가면 고산증에 걸리지 않고 그러면 우후르 피크 정상까지 등반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뎠다. 일행은 13명이었지만 한 사람당 포터가 한명씩 그리고 가이드 6명, 또 여러 명의 쿠커를 포함해 모두 35여명 정도가 움직이는 대부대였다.

 

첫날은 해발 1800m인 마차메 게이트에서 출발해 6시간을 산행해 3000m에서 캠프를 차리고 잠을 청했다. 정말 오랜만에 텐트에서 잠을 자게 되어 낭만적인 기분도 잠깐 있었지만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고소증세가 올 수 있다는 말에 걱정 반 염려 반으로 뒤척이고 있는데 밖에서 "와!! 별들이 너무 많다"는 말이 들린다. 밖에 나가보니 정말 온통 하늘이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차있고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킬리만자로에는 표범은 없고 별과 먼지만 있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같이 온 대학 후배는 킬리의 별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고정대에 설치하고 아주 진지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다음날 바란코 캠프인 3800m까지 올라가면서 서서히 머리가 아프고 몸 상태가 이상해지는 고소 증세가 찾아왔고 중도하차를 하면 어쩌나하고 겁이 덜컥 나기 시작했다. 속이 울렁거려 식사도 잘 할 수 없었고 손 끝이 저리고 잘 때 갈증과 함께 얼굴이 퉁퉁 붓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4일째 힘들게 바라프 캠프인 4600m까지 와서 저녁도 먹는둥 마는둥 했는데 저녁 10시까지 잠깐 쉬고 11시부터 야간 산행을 하여 우후르 정상까지 8~9시간 산행을 해야 한다고 한다. 상상이 안되는 강행군이다. 모두들 헤드 램프를 하고 각오를 단단히 한 채 스틱을 챙겼다. 조금만 가파른 곳이 나와 보폭을 크게 하면 호흡이 가빠지면서 고소증세가 심해졌다. 잠시의 내리막도 없이 끝없이 올라가는 길이었다. 점점 속도가 뒤처지고 지쳐갈 때 '이브라'라는 청년 가이드가 바로 앞에서 자신을 따라 오라며 내 속도에 맞춰 보행을 해주었다. 잠시가 아니라 몇 시간을 그렇게 나와 말없이 동행을 해주었다. 그 순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으며 그 청년의 발걸음만 보고 걸었다. 그러면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고 그렇게 하여 우후르 피크 정상에 아침 9시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10시간 동안의 길고 긴 고행을 마친 기분이었다. 잠시 앉아서 쉬기라도 하면 눈꺼풀이 그대로 감기었다.

 

고행을 통해 체득한 것이 하나 있다.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대치 않았던 누군가의 안내나 도움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던, 부처님의 공덕이든, 뜻밖의 행운이던 간에…. 힘든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는 이제 자신감도 생겼고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는 의지력도 생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이것과는 다른 것 같다. 큰 목표 앞에서 나를 내세우기 보다는 오히려 더 겸손해져야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같이 동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체득한 여름 휴가였다. 그것이 내 마음에 남은 킬리만자로의 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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