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시끌, 와글와글! 수다로 풀어내는 문화다양성! 무지개 수다방 Open Party'라는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의 파티 초청장을 받은 건 지난 10월 초순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해 진행하는 '2013 무지개다리' 사업의 일환으로 전주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문을 연 것이다. 꼭 가봐야 했던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주마당창극의 폐막과 제주초청공연이 바로 코앞이었던지라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나쳤다. 얼마 후 '무지개 수다방 두 번째 프로젝트 - 한 땀 한 땀 토크'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어깨너머 전해 들었다. 제목만으로도 운영 프로그램이 그려질 만큼 재치 있는 작명센스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역시나 참석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시 들려온 세 번째 소식은, '무지개 수다방'의 그녀들이 겨울소풍을 떠난다는 것. 완주의 다문화가족 여성들의 커뮤니티 공간인 '북까페 보물섬'이 목적지라 한다. 벤치마킹도, 현장견학도 아닌 소풍이라니! 그것도 눈발 펄펄 휘날리는 이 추운 겨울에? 만사를 작파하고 그녀들의 겨울소풍에 동행하기로 했다.
△‘문화적 차이’를‘수다’로…전주‘무지개 수다방’
전주동문예술거리에 위치한 ‘무지개 수다방’은 결혼이주여성과 그의 가족, 유학생, 그리고 다양한 문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주민 모두에게 열려있는 소통의 공간이다. 지난 10월11일 문을 연 수다방의 개막식 초청장에는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수다;]란, ‘공짜로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얄미운 그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무지개 수다방의 모든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수다’가 포함돼 있다. 아니, ‘수다’ 자체가 핵심이다. 이주민 대상 수요조사를 통해 ‘음식과 노래’ ‘바느질’ ‘댄스’ ‘커피’ 등 5개의 주제를 정해 수다와 결합한 다양한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바느질로 여는 한 땀 한 땀 토크’와 나라별 전통음식 및 나만의 요리법을 공유하는 ‘맛있는 수다방 레시피’는 단순한 교육강좌를 넘어 육아와 시집살이, 진로, 꿈 등 서로의 경험과 생각과 고민을 수다로 풀어놓을 수 있는 마치 동아리 활동처럼 운영되고 있다. 사업 담당자인 김미순 씨는 “운영기간 한 달 남짓한 짧은 시간 참가자간의 네트워크가 촘촘하고, 끈끈하게 자리잡은 이유는 무지개 수다방 만의 독특한 프로그램과 운영방식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강좌를 통해 작지만 행복한 성과도 생겼다. 유난히 바느질에 남다른 솜씨를 발휘했던 로지마 씨(35·우즈베키스탄)가 강사로 참여한 지역작가의 공방에서 자신의 작품을 위탁판매 키로 한 것.
△ 자라온 환경 서로 다르지만 친구가 됐어요!
이번 겨울소풍의 참가자는 열 명. 결혼이주여성 넷, 가족들 셋, 문화기획자 세 명이다. 배타마라(41·우즈베키스탄), 구안나(28·배트남), 한올가(28·키르키즈스탄), 이예진(28·우즈베키스탄). 한국에 들어온 시기도, 자라온 환경도, 생활방식도, 언어도 다른 그들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결혼이주여성’이라는 타이틀 하나. 얼마 전부터는 새로운 공통점이 생겼다. ‘무지개 수다방’의 ‘동기생’.
맏언니격인 타마라 씨는 올해로 한국생활 13년 차에 접어든 고참이다. 지난 2002년 나라 전체가 한·일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있을 때 결혼해 한국 땅을 밟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학과를 졸업하고 전문통역가로 활동했다. 지금은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다문화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오늘이 김장김치 500포기 준비하는 날인데, 소풍에 꼭 참여하고 싶어 시댁 어른께 부탁해 어렵게 참석했다”고 말했다.
외국인 며느리로써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그렇게까지 참석하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무지개 수다방에서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났다. 서로 나라도, 나이도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에 있다 보니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며 “요즘은 수다방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지난 ‘한땀한땀 토크 2차 모임’에서 ‘곰돌이 만들기’ 미션을 발군의 실력으로 끝낸 덕에 무지개 수다방 최고 빠른 손으로 통한다는 한올가 씨. 건축업을 하는 남편과 5살, 2살 두 딸을 둔 한국생활 6년차 주부로 바리스타 과정을 이수했다. 내친김에 자격증 시험도 준비 중이라는 그는 “특히 필기가 어렵다”며 고개를 젖는다.
가장 최근에 무지개 수다방에 합류한 구안나 씨는 남편과 친정부모를 모시고 함께 왔다. 베트남 중부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는 그는 지난해 3월에 결혼해 한국에 온지 1년8개월된 새내기 신부다.
그는 “한국은 친절하고 정이 많다. 아직 한국말이 서투르지만 주변에서 많이 도와준다. 아이가 조금 크고나면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며 옆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아내를 지켜보던 남편과 눈을 맞추고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했다.
△활기 넘치는 그들의 공간 완주 ‘북까페 보물섬’
한참을 달려 이번 겨울소풍의 목적지인 완주군 봉동읍사무소 건물에 위치한 ‘북까페 보물섬’에 도착했다. 지난 2010년 10월 지역민과 다문화인의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고, 지역공동체문화 확산 및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인식 개선,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문을 연 다문화가족 여성들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이병윤·김정례 목사 부부가 반가운 얼굴로 전주 소풍객을 맞아주었다. 능숙한 솜씨로 커피를 내리는 딘티투 씨(26·베트남)의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와 허브티를 앞에 두고 두 사람의 허심탄회한 이야기와 소풍객의 질문이 함박눈처럼 쏟아졌다. 지금의 이 공간을 일구기까지 8년여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부터, 설립 전 지역 어르신들의 반대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다문화여성들이 대상자가 아닌, 주체자로서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고, 자립기반을 갖추기 전까지 일정부분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속깊은 얘기까지 진지하게 이어졌다.
핸드드립 커피에 관심이 많은 이예진 씨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공간이다. 어떻게 하면 전주에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를 물으며 “지금의 모임이 네트워크 구축에 머무르지 않고 향후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로 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좀더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북까페 보물섬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준비한 정통 베트남 칼국수를 먹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뒤 공간 구석구석을 마음과 카메라에 담아내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전주행 버스에 올랐다. 함박눈은 이미 잦아들었고, 소풍으로 들떴던 버스 안 공기도 차분히 가라앉았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실체가 보이는 꿈 한조각씩은 가슴 속에 품은 듯 보였다. 간밤의 과로를 탓하며 얕은 잠에 빠져들 무렵 “참, 무지개 수다방은 계속 운영하나요?” 누군가 물었고 “우리가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달라요”라는 대답이 꿈결처럼 들려왔다. 그녀들은 어떤 꿈을 그리게 될까…
송은정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문화재단 문화사업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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