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경계' 속에서 다양한 빛깔 수용할 줄 아는 '우리'가 되길
“저는 자유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제가 바란 것은 그저, 어느 쪽이든 간에 나갈 수만 있으면 되는, 그런 출구였지요.”
채 열 평도 안 되는 좁은 무대 위, 사람도 아닌 원숭이가 던진 이 한 마디 대사가 내내 꽁꽁 얼어붙어있던 인간의 마음을 울린다. ‘우리’란 울타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숭이인 ‘나’를 버리고 ‘우리’인 인간을 흉내 내었던 원숭이 ‘빨간 피터’. 인간을 흉내 내느라 원숭이인 자신의 본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 가련한 원숭이 빨간 피터는 너무나 쉽게 선을 긋고, 편 가르고, ‘우리’란 울타리로 ‘우리’ 아닌 누군가를 소외 시키고 또 소외당했던 바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참 오랜만에 ‘인식과 감각의 즐거움’을 함께 선사하는 깊이 있는 무대를 만났다. 현재 창작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빨간 피터, 키스를 갈망하다〉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각색한 연극이다. 고인이 된 배우 추송웅의 1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단편은 억압적 현실에 순응하는 것을 자유라 착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정체성,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우화(寓話)이다.
이번 창작극회의 〈빨간 피터, 키스를 갈망하다〉 공연에는 기존의 빨간 피터 공연에서는 주목하지 않았던 ‘경계인’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게 담겨있다. 실제로 체코 출신이자 동시에 유태인이었던 카프카가 처했던 ‘출구 없는 상황’ 그 속에서 겪었던 사회적인 차별과 모순, 정체성의 혼란에 주목한 정초왕 연출은 ‘빨간 피터’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경계인(주변인), 소수자, 이민자로 해석하여 ‘우리’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계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리’란 구호 아래 ‘나’를 희생하도록 만드는 사회, 배제와 차별, 편견과 반감, 그 수많은 경계를 가로질러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 연출의 문제의식과 원숭이의 고백 형식을 띤 모노드라마 원작에 자기 몸과 존재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입양인의 문제를 빗대어 바라본 작가의 새로운 관점은 이번 공연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래서인지 모노드라마를 끌고 가는 배우의 역량이 전면에 도드라졌던 기존의 빨간 피터 공연과는 달리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의 ‘입’을 통해 던져지는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온다. 특히 작가와 연출에 의해 새로 작품에 초대된 입양인 ‘순이’의 존재는 우리와 더불어, 우리 속에 살아가는 또 다른 빨간 피터의 모습으로 더욱 강렬하게 인식된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수많은 경계와 억압을 상징하는 듯한 크고 작은 궤짝들과 철창, 울타리의 이미지로 단순화한 무대, 삭막한 어둠을 섬세하게 가르는 조명, 무엇보다 빈 무대를 가득 채우는 관록 있는 두 배우(홍석찬, 서형화)의 에너지는 관객이 그들이 보고하는 학술원의 진짜 회원이 되어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한 채 강요된 삶을 견디고 있는 피터의 운명이 곧 우리 자신의 운명임을 깨닫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바라건대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우리’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걸핏하면 선을 긋고, 경계 짓고, ‘우리 편’ 아니면 ‘네 편’ 가르기 좋아하는 ‘그분’들을 이번 연극에 꼭 초대했으면 하는 바이다. 그래서 자기와 맞지 않으면 색깔을 칠하고 서슴없이 마녀사냥을 하는데 앞장서는 ‘그분’들이 빨간 피터가 던지는 메시지에 뜨끔하길! 우리가 찾아야 할 색은 빨간색, 파란색이 아니라 저마다가 지닌, 흉내 내고 구분 짓고 명명할 수 없는 다양한 빛깔임을 깨달을 수 있길 바란다.
※연극 〈빨간 피터, 키스를 갈망하다〉 공연은 15일까지 전주 창작소극장에서 열린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후 3시/7시, 일요일 오후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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