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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시복 24명 의미와 전망] 세계적 천주교 성지 중심지 자리매김

전동성당·완주 초남리 등 순례객 늘듯 / 종교·역사·관광 자원화도 탄력 기대

▲ 전동성당 ‘윤지충 바오로’ 동상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을 결정한 한국의 가톨릭 첫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가 1791년 순교한 전주 한옥마을의 전동성당에 세워진 동상을 신도들이 둘러보고 있다. 목에 긴 칼을 차고 있는 오른쪽 인물이 윤지충 바오로이며 왼쪽은 외종형으로 함께 참수 권상연 야고보다. 연합뉴스

교황 프란치스코가 시복 결정을 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중 24위가 전북에서 숨진 천주교 순교자들이다. 1984년 한국 천주교에서 시복시성된 인물은 국내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가톨릭 성인 103위가 있으며, 그중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된 7명의 순교자가 포함돼 있었다.

 

이번에 전북 순교자 24명이나 추가로 천주교 성인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전북이 천주교 성지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전북도와 천주교 전주교구가 노력해온 전북지역 천주교 성지의 세계적 종교·역사·관광 자원화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실제 순교자들이 모셔진 치명자산과 숲정이, 천호성지를 비롯, 순교자들과 연고가 있는 완주 이서 초남리, 전주 서천교·초록바위·풍남문·전동성당 등 천주교 성지들을 찾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전라도 천주교회는 특히 1801년 신유박해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으며, 이번에 시복된 순교자들도 이때가 가장 많다. 당시 노론 벽파는 정조 사망 후 정조의 개혁정치를 주도했던 천주교와 연결된 남인 시파를 제거하기 위해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대대적으로 단행했으며, 전라도에서 200여 명에 이르는 많은 신자들이 체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중 20명이 처형됐으며, 유항검·윤지헌 등 지도층 신자 5명은 전주 남문 밖에서 처형당했다. 순교터에는 1915년에 전동성당이 건립되었고, 유항검이 살던 집터는 현재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또 전주 감옥에서는 유중철이 교수형을 당해 순교했고, 숲정이에서는 유항검의 가족들인 신희·이육희·이순이·유중성(마태오) 등이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이번 시복 대상에서 124위의 대표자로 이름을 올린 윤지충(1759~1791년)은 1791년 12월 8일 한국천주교회에서 첫 번째로 참수된 분이다. 전라도 진산 출신(1963년 전북에서 충남 금산으로 편입)으로, 1790년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렀다가 체포돼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그의 고종 사촌인 권상연(1751~1791년, 야고보)도 함께 참수돼 이번에 시복됐다.

 

유항검(1756~1801년, 아우구스티노)은 전주 초남(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서 태어난 양반 집안 출신으로,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에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 전라도 지역 최초의 신자가 됐다. 1801년에 순교한 유중철과 유문석(요한)은 그의 아들이고, 그 다음해에 순교한 이순이(루갈다)는 그의 며느리, 유중성(마태오)은 그의 조카다. 그는 초기 한국천주교에서 평신도가성직자 대신 미사와 성사를 맡는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에 따라 성직자로 활동했으며, 이번 시복된 주문모 신부를 호남으로 데려가 성무 집행을 보조해 ‘호남의 사도’라 불린다.

 

유항검의 아들 부부인 유중철(1779~1801년, 요한)·이순이(1782~1802년, 루갈다)는 주문모 신부에게 동정 생활의 뜻을 전하고 결혼 뒤에도 오누이처럼 지냈다. 유중철이 아내에게 보낸 서한 중에 “누이여,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주교구에서는 매년 가을 이들을 기리는 ‘요안 루갈다제’를 연다.

 

이밖에 한정흠(김제 참수), 최여겸(고창 무장 참수), 김천애·이경언·이일언·신태보 이태권·정태봉·김대권·김조이·심조이·이봉금·홍재영 ·최조이·이조이·오종례(이상 전주 참수) 등이 시복이 됐다.

 

한편,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교황청의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결정과 관련해 9일 “하느님께서 한국 교회에 커다란 은총을 주셨다”고 밝혔다.

 

주교회의는 “1984년 당시 103위 복자가 시성된 이후 아직 시복시성이 되지 않은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그런 염원이 시성 30주년인 올해 시복의 열매를 맺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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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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