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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화예술가-서완호 작가 "제 그림 거부감 느끼나요? 바로 우리사회 단면이죠"

비닐 쓴 얼굴 '극사실주의' 추구 / 족발 배달 씌워진 봉지 보고 착안 / 한결같은 치열한 작업 태도 호평 / / 재료 보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 의문 갖고 봐주길…10월 개인전

▲ 서완호 작가가 작업실에서 작품을 그리고 있다.

미술은 오랫동안 대상과 같은 모습이길 원했다. 사실주의에 대한 욕망과 시선은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에서 소개된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대결 일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경쟁자였던 두 사람은 어느날 시민 앞에 각자의 그림을 놓고 우열을 가리기로 한다. 제욱시스가 먼저 포도 그림을 선보이자 때마침 주위에 있던 새들이 포도를 먹기 위해 그림으로 돌진했다. 반전은 그 다음이다. 제욱시스는 파라시오스에게 천을 걷고 작품을 보이라 했다. 파라시오스는 “그 천이 바로 내가 그린 그림”이라며 제욱시스에게 패배를 안겼다.

 

보이는 대로의 묘사는 고대뿐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눈을 매혹한다. 사실주의를 넘어 사진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극사실주의는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완호 작가(31)의 그림을 처음 대할 때도 그렇다. 검은 봉지를 뒤집어 쓴 얼굴 위로 비닐의 미세한 구멍과 주름까지 표현한 세밀함에 작가의 치밀함이 드러난다. 극사실주의 그림으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서 씨는 캔버스 앞에서 요령을 피우지 않고 한결같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젊은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지난달 28일 전북대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스케치 작업을 끝내고 본격적인 채색을 하고 있었다. 물감의 밀착성을 높이기 위해 표면에 젯소(gesso)를 바르고 사포질해 부드러운 캔버스에 인쇄하듯 위에서부터 여백을 채우고 있었다.

 

그림은 하얀 비닐을 쓴 여성의 얼굴이었다. 그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비닐 봉지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대량생산하는 만큼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존재감이 없는 물질이다. 이는 동시대인의 몰개성과 ‘참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상징한다. 비닐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서로 폐쇄된 관계에서 고독과 소외의 상태에 머문다.

 

“급속하게 공동체가 해체된 사회에서 개인주의로 떠밀려가는 불안정한 모습과 서로가 고립된 상황을 넘어 스스로를 가두고 타인을 거부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비닐을 이용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렸습니다.”

▲ 서완호 作

지난 2011년 말부터 ‘비닐 작업’에 몰두한 그는 하얀 비닐에 앞서 새까만 비닐을 이용했다. 강렬한 색의 대비와 극사실적인 묘사에 일부 관람객은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서 씨는 “예술은 동시대 작가가 느끼는 사회의 모습과 인간의 내면을 비춰야 한다”며 “거부감이 있었다면 그게 바로 관람객이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비닐 그림의 탄생은 우연이었다.

 

그는 “족발을 배달시켰는데 그 위에 씌워진 봉지를 보고 착안했다”며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특성이 현대인과 중첩됐다”고 들려주었다.

 

이후 그는 지인들을 모델로 세워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비닐 색도 투명한 흰 색으로 바꿨다.

 

서 씨는 극사실주의를 추구했지만 작품의 형식만 부각된 점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표현은 내용을 담기 위한 수단인데 오히려 사실주의가 해석을 방해하는 부작용이 생겼다”며 “재료적 측면보다는 왜 이렇게 그렸을까라는 의문으로 감상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형태를 분절·해체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비닐 작가’의 고착화를 우려해서다.

 

그는 “그동안에는 잘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제는 필요한 부분만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내용의 밀도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신장 187㎝의 소유자인 그는 예고와 미대를 다녔지만 운동을 먼저 접했다.

 

그는 “원래는 아버지가 운동을 시키려 해서 테니스, 스피드 스케이팅, 수영 등을 했는데 운동신경이 없고 미술이 더 좋았다”며 “예고 진학을 앞두고 4개월 동안 데생에 열중한 결과 입학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현재도 학생 신분인 그에게 전업작가는 여전히 부담이다. 그는 “대학 동기 40명 가운데 현재까지 그림을 지속하는 사람은 혼자다”며 “‘너는 뭐 하냐’고 물었을 때 ‘작업한다’라고 하면 백수처럼 인식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예술은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 만큼 꾸준히 일을 하고 있는데도 폄하하는 인식은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도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림에 열중해 오는 10월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서완호 작가는 전주예고, 전북대 미술학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2009년 매개공간미나里 대인예술시장 레지던스프로그램 제2기 입주작가와 2012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하반기 입주작가로 참여했다. 지금까지 3차례의 개인전과 26차례의 기획 및 단체전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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