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료 시범사업·수가 결정구조·전공의 환경 등 개선 약속
24일로 예고된 대한의사협회(의협)의 2차 집단 휴진을 앞두고 펼쳐진 막판 협상에서 다행히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안 도출에 성공함에 따라 일단 '의료대란'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정부가 입법 전 원격진료 시범사업과 수가(의료서비스 대가) 결정제도, 전공의 수련환경 등에 대한 개선 의지와 일정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힌 만큼, 의료계도 국민의 불편과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2차 집단 휴진을 강행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원격진료 4월 시범사업·건정심 개편·전공의 수련시간 감축 등 추진 17일 정부와 의협이 발표한 '중간 협의안'에 따르면 의협이 그동안 대정부 투쟁의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웠던 원격진료 도입의 경우, 양측은 의협의 주장대로 국회관련법 처리에 앞서 시범사업을 시행해 문제점을 파악하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기본적으로 우선 원격의료 도입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후 시범사업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자는 입장이었으나,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혀 한 발 물러선 셈이다.
이번 협상에서 양측은 '4월부터 6개월 동안'이라는 시범사업의 일정과 기간까지구체적으로 합의해 실행이 사실상 확정됐다.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 등을 포함한 투자활성화 대책 역시 정부는 의 협·병원협회·치과의사협회·한의사협회·약사회 등과 함께 따로 논의 기구를 구성, 추가 협의하기로 했다.
또 의협이 항상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해온 수가 결정 구조도 손질된다.
매년 의사나 약사들은 협회를 통해 정부·건강보험공단과 자신들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대가, 이른바 수가를 얼마나 올릴지 협상한다.
이견이 커 협상이 결렬되면 공적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이 표결로 조정 폭을 확정하는 구조이다.
현재 건정심 위원 24명은 위원장(복지부 차관)을 제외하고 공급자측 대표(의협·병협·치협·한의사협 등) 8명, 가입자측 대표(경총·민노총·한노총·지역가입자등) 8명, 공익대표(복지부·기획재정부·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 4명 및 장관 위촉 교수·연구원 4명) 8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의협측은 이 구조 아래에서는 중립적 시각으로 판단해야할 공익대표 8명에 정부측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계속 지적해왔고, 정부도 이 같은 의료계의 불만을 받아들여 이번에 개선안을 내놨다.
현재 공익대표 가운데 복지장관 등 정부 추천 몫(현재 4명)을 가입자와 의협 등공급자가 같은 수로 추천하도록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또 의협과 건보공단의 수가 협상이 깨질 경우 건정심으로 넘어가기 전에 가입자·공급자가 참여하는 중립적 '조정소위원회'를 통해 다시 한 번 논의하는 제도적 장치를 올해 안에 마련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의사들의 집단휴진의 근본적 배경중 하나였던 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의협이 확보하게 된 셈이다.
집단 휴진에 가장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전공의들을 달래기 위한 '당근'들도 제시했다.
이는 이번 집단 휴업 사태를 통해 새삼 부각된 전공의들의 영향력과 위상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 의-정 협상 과정에서도 현재 이대목동병원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가 의협측 협상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침상 '최대 주당 88시간'으로 규정된 전공의 수련 시간을 유럽(48시간)·미국(80시간)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축소 조정하고, 전공의 재수련(유급) 조항도 폐지를 사실상 약속했다.
아울러 정부는 앞서 합의된 '수련 환경 개선' 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수련 병원을 실효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전공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수련환경 평가 대안을 오는 5월까지 내놓을 계획이다.
◇ 2월 의료발전협의회 협의안 보다 '진전'…집단 휴진 찬성률 50% 밑돌아 철회될 듯 이제 24~29일 2차 휴진 강행 여부는 전적으로 9만여명 의협 회원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의협은 당장 이날부터 의-정 중간 협의안을 투표에 부치고, 투표율에 상관없이 투표 참여 회원의 50%이상이 원하는 대로 향후 일정을 조정한다.
정부측은 일단 의사들이 이번 협의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과반수가 집단 휴업 강행에 반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선 가장 큰 쟁점이었던 원격의료의 경우, 국회 입법 과정에 앞선 시범사업의 구체적 일정까지 제시된 만큼 다수의 의협 회원들도 이 선에서 협상안을 수긍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적으로 정보통신(IT) 기술을 의료 서비스와 접목,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원격의료 도입 시도를 계속 원천적으로 틀어 막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범사업을 통한 안전장치 마련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의-정 갈등의 또 다른 구조적 요인인 '저(低)수가', '불리한 수가 결정 구조' 문제 역시 의협으로서는 일단 이번 정부의 약속을 믿고 이행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다만 협상안에서 건정심 공익대표 전원(현재 8명)을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 서비스 공급자가 반반씩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건보공단·심평원 관계자 몫(현재 4명)을 제외한 나머지 추천 위원(현재 4명)들에 대한 동수 구성만 제안된 만큼 이 부분을 놓고 의협 내부에서 실효성 논란이 커질 수도 있다.
정부·공단 등의 몫이 보장돼있는 한, 수가 인상 등 공급자측에 유리한 결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단 현재 정부만 추천 가능한 구조에서, 앞으로는 가입자와 공급자가 같은 수로 추천하자는 원칙에 합의가 이뤄졌다"며 "필요에 따라서는 추천을 통해 선임되는 건정심 위원 수 조정을 비롯, 전체 건정심 구조 개편도 논의될 수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정이 의료발전협의회 논의를 거쳐 지난달 18일 발표한 협의안에 비해 원격의료 시범사업 시점, 건정심 구조 개편 입법 추진, 전공의 환경 개선 실효성 제고 방안 등이 추가된 만큼 의협 회원들도 합리적으로 판단해주실 것으로 믿는다"며 "만약 의협 투표에서 부결된다면 정부도 재협상 보다는 원칙에 따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1~28일 진행된 의협 투표에서는 의료발전협의회의 최종 협상안에 도 불구, 회원의 76.69%(3만7천472명)가 집단 휴진에 찬성하고 이달 10일 강행한 바있다.
의협 관계자는 "이번 협의안에 아직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의미있는 진전도 상당히 있었다"고 일단 총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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