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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자

▲ 김동문 전주 완산교회 담임목사

이전에 비해 요즘은 비행기를 많이 탑니다. 비행기를 타려면 몇 가지 절차가 있습니다. 먼저 탑승 예약을 합니다. 그 다음에는 약속한 날짜에 공항에 나가서 탑승절차를 밟은 후 출구로 나갑니다. 시간에 맞추어 비행기에 탑승합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곧바로 자신의 지정된 좌석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작은 가방을 선반 위에 넣고 좌석에 앉습니다. 그 때 자연스럽게 동행자가 정해집니다. 옆에는 뚱뚱한 남자가 앉을 수도 있고, 날씬한 미인이 앉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동행자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번 자리가 정해지면 동행자가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거나에 상관없이 목적지까지 내내 같이 가야 합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나그네 인생길을 가는 우리에게 삶의 자리를 정해주십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 옆에 동행자들을 붙여주십니다. 그래서 지금 내 곁에 배우자가 있고, 자식이 있습니다. 친구가 있고,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붙여주신 동행자들입니다. 인생의 여행길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우리와 동행하도록 짝지어주신 사람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들처럼 고마운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들이 있기에 나그네 인생이 외롭지 않고, 이들이 있기에 고달픈 인생이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인생의 풍파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승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동행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 곁에 있는 동행자는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곁에는 항상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생을 살다보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데 이 동행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자를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외로울 때 위로해 주고, 우울할 때 기쁨을 줄 수 있는 동행자가 좋은 것이지, 철저하게 악역을 맡고 사는 사람은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때때로 나의 교만과 모난 성질을 고치기 위해서 그들을 붙여주십니다. 못된 남편, 못된 아내, 못된 시어머니, 못된 며느리를 만나게 하십니다. 

 

가까운 사람 중에 늘 고통을 주는 동행자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수없이 눈물을 흘리며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그 아픔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로 인해 오늘의 내가 있고, 그로 인해 다듬어진 내가 있다면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미련함이 인간의 지혜보다 낫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미련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항상 앞서 보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 내 곁에 있는 동행자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동행자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주고, 격려하십시오.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십시오. 후회 없는 사랑을 하십시오. 잠시 후면 당신이나 동행자나 짧은 나그네 인생길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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