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6:09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조상진 칼럼
일반기사

가짜 지도자와 진짜 지도자

▲ 객원논설위원
꽃 같은 푸른 생명들이 바다 밑창으로 가라앉았다. 국상(國喪)이었다. 왕조시대의 상감마마가 승하해서가 아니다. 온 국민의 가슴 속에 맹골수도 파고보다 더 높은 슬픔이 넘실거렸다. 그러니 이 보다 더 큰 국상이 어디 있겠는가.

 

이 어이없는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마비된 듯했다.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끝내 분노로 변했다. “이게 나라인가”하는 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국민소득 3만 달러니, 세계 10위 권 경제대국이니 하는 수식어가 얼마나 사상누각인가가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민낯은 부끄럽고 참담했다.

 

21년전 서해훼리호 사건의 기억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좀 진정 기미를 보이긴 하나 아직도 트라우마는 계속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번 참사는 1993년 10월 10일 서해 훼리호 사건의 재판이었다. 21년 전 군산 주재기자로 있을 당시, 그 과정을 똑똑히 지켜봤다. 292명의 탱탱 불은 시신들이 위도 앞바다에서 군산 공설운동장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보며 할 말을 잃었었다. 사고 원인이며, 유족들의 비통함, 잠수부들의 작업, 해상 크레인 동원, 검찰의 수사 등등….

 

그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선장의 ‘잠적설’이다. 당시 백운두(당시 56세) 선장이 배를 버리고 탈출했다는 것이다. 시신 인양이 늦어지면서 백 선장이 무인도나 중국으로 잠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검찰은 그것을 믿고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하지만 백 선장은 침몰된 배 안의 통신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통신실로 뛰어 들었다가 순식간에 휩쓸려 들어온 물살에 출입문이 막혀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잠적설은 ‘귀신 잡는 검찰’이란 오명을 남기고 해프닝으로 끝났다.

 

반면 이번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69)은 팬티 바람으로 맨 먼저 탈출했다. 탑승객을 팽개치고 제 한 몸만 빠져 나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바다의 법칙(the rule of the sea)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월급 270만 원 짜리 비정규직’이라는 점과 배후에 그보다 더 큰 선주의 비리와 부패사슬이 드러나긴 했지만.

 

해난시 바다에서는 어린이와 여성들을 먼저 구하고, 선장과 선원은 맨 나중에 탈출하는 게 오랜 법칙이다.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드호와 유명한 타이타닉호 사건 등이 그런 전통을 세웠다. 또 남극 탐험선 인듀어런스호의 선장 어니스트 새클턴은 634일 만에 전 대원을 무사히 귀환시켜 ‘위대한 실패자’로 존경받고 있다.

 

우리 주위에선 이 선장 같은 자격 없는 가짜 선장들이 의외로 많다. 그것은 이번처럼 위기시에 드러난다. 역사적으로 보면 임진왜란 때 의주로 도망간 선조와 6·25 전쟁 때 한강 다리를 끊고 자신만 도피한 이승만 대통령이 대표선수다. 오죽 분노했으면 왜구가 아닌, 백성들이 왕궁에 불을 질렀겠는가. 이 대통령의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라”는 녹음 방송은 세월호 참사시 “구명보트를 입고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방송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선내 방송만 아니었어도 꽃봉오리 같은 학생 250명을 포함해 304명의 고귀한 목숨이 희생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지방선거에서 '가짜 선장' 가려내야

 

세월호 참사의 애도 분위기 속에서도 6·4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불과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지방선거는 4년 동안 자치단체호의 살림을 맡을 선장을 뽑는 일이다. 이러한 때 가짜 선장과 진짜 선장의 옥석(玉石)을 구분(俱焚)해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옥석이 함께 타버릴 수 있으니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인도 마발지역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곳에서는 악마 상을 희게 칠한다고 한다. 악마는 정결과 정직의 탈을 쓰고 인간에게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흰 분칠을 한 가짜 선장을 가려내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아직도 진행 중인 세월호 국상이 던지는 교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상진 chos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