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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소병진 소목장 "한민족 혼 서린 전주장(全州欌), 박물관·교육관 지어 기록·보존"

15세부터 가구 공방서 기술 배워 / 요즘에도 하루 평균 12시간 작업 / 소목장 유네스코 등재 새로운 꿈

▲ 소병진 소목장이 전주장 복원과 보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열다섯, 판사를 꿈꾸던 소년은 50년이 지난 2014년 9월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55호 소목장(小木匠) 보유자가 됐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고 꽃을 피어 내는 인동초(忍冬草)처럼 시련과 고난의 역사를 이겨낸 소병진(64) 소목장은 마침내 중요무형문화재 등록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소병진 소목장은 나무를 다루는 일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했다. 특히 전주장은 주로 500년 이상 묵은 질 좋은 고사목의 무늬(용목)를 골라 사용하는데 이 원목도 바로 쓰이지 않는다. 원목은 노지에서 눈과 비바람, 햇볕을 품으며 진을 빼고, 크게 켜서 건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시간 10년. 이후 본격적으로 가구가 제작되는 데만 2년이 걸린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전주장이 다시 부활하기까지, 장인과 나무의 기다림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조선한식가구(전주장)로 지정되기도 한 그는 1대 고(故) 강일봉, 2대 김석환, 3대 최규환, 4대 이해민 선생 등에 이어 5대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7일 완주군 용진면 운곡리에 자리한 소병진 소목장의 작업실에서 그를 마주했다.

 

-지난달 중요무형문화재 55호 소목장 보유자가 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은 우선 개인의 영광이고 전북도 그리고 소씨 가문의 영광입니다. 4년 전 중요무형문화재 선정 탈락이라는 아픔을 맛봤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오로지 ‘실력’만으로 해낸거죠. 전북 사람이 조선 역사의 보루(堡壘)인 전주장을 통해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가구 제작 부문 명장 1호 등 최초,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주는 부담도 있을 법 한데요.

 

“최고, 최소, 최연소 등 제 앞에 붙는 단어들이 주는 부담에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그렇지만 저를 나타내는 말들을 지켜 내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역시 다르구나’라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요즘에도 하루 평균 12시간은 작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소목장은 아주 예민한 일이라 일주일만 대패를 안 잡아도 손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0.0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일, 과학이 숨어 있는 일이 바로 소목장이죠.”

 

-나무, 가구와의 인연이 궁금해집니다.

 

“고향인 완주군 용진면 용흥리는 소(蘇)씨 가문의 집성촌으로 목수 마을로도 유명했습니다. 당시 동네에만 15명의 목수가 있었죠. 목수 일은 고조 때부터 내려온 가업으로 아버지는 건축물을 다루는 대목(大木) 일을 하시면서 일 년씩 외지에 나가 계시곤 했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대목 대신 장롱과 궤함 등을 제작하는 소목(小木) 기술을 배워 칠남매 중 허리(넷째)인 내가 동생들을 가르쳐야겠다고 말입니다. 그 길로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가구 공방에 다니는 8촌 형을 따라 ‘전주 중앙가구’에 들어가 소목 일을 배웠습니다. 제 나이 열다섯이었습니다.”

 

-다른 가구나 장식품들 가운데 ‘전주장’을 재현하시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지요.

 

“일명 ‘목수 공무원’이 되는 곳이 서울 동일가구였습니다. 휴일이면 공방이 쉬기 때문에 동일가구와 홍익가구 등 내로라하는 가구점이 즐비한 인사동에 들려 각종 가구를 구경할 수 있었죠. 어느 날 한 골동품 가게에서‘전주태극이층장’을 보는 순간 ‘이것은 내가 기필코 복원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월급을 타면 느티나무를 사서 고향 집에 쟁여 놓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죽은 나무를 모으는 것에 의문을 품었지만, 저는 나무가 마를 때까지 기다린거죠.”

 

-‘전주장’의 제작 과정에서 특별한 점이 있다면.

 

“전주장은 국내 느티나무나 먹감나무, 참죽나무, 적송고재(홍송) 등을 사용해 각 부위의 무늬를 살리고, 결구를 견고하게 제작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전주장 제작의 특이한 점은 전면과 뒷면의 각각 다른 부재 적층 사이에 전주 한지를 넣어 붙이는 적층기법으로 가구 판재가 수축하고 팽창하며 갈라지는 폐단을 막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입니다.”

 

-‘전주장’의 매력을 꼽는다면.

 

“조선시대 가구라는 점만이 전주장의 매력은 아닙니다. 조선의 탄생부터 멸망을 함께 하면서 한민족의 혼이 서려 있다는 역사성과 더불어 쓰임새, 디자인에 전주장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특징들이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느티전주버선장의 경우 9개의 다리를 가진 주꾸미 5마리를 통해 5대를 거치며 45명의 자손을 얻으라는 뜻의 ‘씨족사회’의 확장성, 박쥐를 통한 집성촌의 특징, 불로초를 통한 장수 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주장’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지요.

 

“전북도민 나아가 온 국민이 전주장에 대해 알기를 바랍니다. 등잔 밑이 어둡지 않게 전북에서부터 전주장을 보호·육성하고 움직이는 역사인 무형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술을 배우던 50년 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점과 여전히 변하지 않은 점을 든다면.

 

“예전에는 가구를 만드는 사람을 일컬어 ‘농방쟁이’라고 표현했으나 요즘은 선생이나 장인, 소목장 등 기능 보유자로 대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문화 예술에 대한 인식 변화와는 달리 사회 전체적으로는 문화 예술이 여전히 홀대받고 있음을 느낍니다. 전주장이 전주한옥마을에는 없는 현실, 좋은 문화유산을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울 뿐입니다.”

 

-향후 계획이나 바람이 있으시다면.

 

“무형문화재는 기능 보유자가 살아 있을 때에만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되니 이제는 박물관이나 교육관을 만들어 전주장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시 급해집니다.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들만으로도 충분히 박물관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고민입니다. 집필 중인 전주장에 대한 논문을 완료하고, 소목장(전주장)의 유네스코 등재라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 소병진 소목장은 전통가구 제조법 연구, 조선시대 전주장 복원

 

소병진 소목장은 조선의 멸망과 맥을 함께한 전주장을 복원해 내면서 올해 9월 문화재청 지정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55호로 선정됐다. 오랜 기간 조선 한식 가구의 제작 기법을 연구하면서 전주장을 재현해 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완주군 용진면이 고향인 긍재 소병진은 1950년 칠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광자진취(狂者進取). 즉 열정적인 사람은 진취적으로 고난을 무릅쓰고 나아간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15살에 당시 경기 이남 지역에서 가구 제작 기술이 발전한 ‘전주 중앙가구’에서 처음 소목 일을 배웠다. 이후 ‘서울 동일가구’로 옮겨 고급 기술을 터득한 뒤 전주로 내려와 개인 공방을 차렸다. 동일가구에서 근무할 당시 눈여겨봤던 전주장의 제작 기법을 연구한 지 20년이 흐른 지금 ‘전통 목가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전주장의 원형을 완전히 습득해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소병진 소목장은 1971년 국제 기능 올림픽 전북대회(가구 제작)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기능인으로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92년 10월 대한민국 명장 가구 제작 1호로 선정, 2012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소목장(전주장)으로 지정되면서 전주장 복원의 사명이라는 스스로의 확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내고 있다.

 

현재는 완주군 용진면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우석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가구디자인전공 겸임 교수(1996년~)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객원교수(2011년~) 등을 역임하면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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