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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하반영 화백을 보내며] 아버지의 만다라

▲ 고 하반영 화백의 생전 모습.

아버지!

 

아버지 가시자, 알라스카 동토의 작고 노란 꽃이 자꾸 보여요. 이제, 알아보기도 힘든 그 꽃을 누가 발견하고 바라보아 줄까요, 아버지!

 

환갑연세에 프랑스유학길에 오른 아버지는 이미 준비된 ‘동양의 피카소’였어요. 아니, 아버진 불행한 나라에서 태어나 열정과 예술탐구정신으로 세계적인 화신(畵神)이 된 분이어요.

 

그림은 만국공통어라며 그림을 그려 보여주며 유럽의 여러 국경을 통과한 일화는 재미났어요. 저 갈대들판을 홀로 나는, 비자 없는 나그네새처럼 60여개 나라를 떠돌 듯이 그림 그리며 다닐 때, 에스키모들과 함께 이글루에서 살던 동토에서 발견한 손가락만 한 꽃에서 위대한 생명력을 발견했다고 하셨지요. “마치 내가 아는 김용옥 시인 같은 꽃!”이라 하셨지요. 아버지는 그림으로 시를 쓰신 분. 아버지는 이야기로 세계여행을 시켜주신 분이었어요. 중국어통 손녀, 일본어통 손자, 미국어통 며느리와 즐거이 나누던 영화와 야구 이야기를 이젠 누구랑 하실까요?

 

아버지.

 

해방전후의 문화예술계 옛날이야기를 어느 어른께 여쭈며, 난세의 낭만적, 열정적 예술혼을 어디서 만날까요?

 

부산 피난시절. 여관방에 담배연기 자우룩 피우며 둘러앉아 하루 한 끼 밥상을 불러먹고는, 이중섭 선생이 담배은박지에 밥값을 그려주고, 아버진 화선지에 갈대밭 위를 나는 노안을 그려 광복동시장에 들고나가면 미군들이 불티나게 사갔다면서요. 그 돈으로 한 달씩 밀린 숙박비를 지불하셨다지요. 저승의 숙박비가 밀리거든 이번엔 먼저 자리 잡은 이중섭 선생께 물리시어요.

 

전주에서 개척사를 하신 이응로 선생님, 아버지가 늘 스승님으로 존경하신 오지호 선생님이랑 벌써 만나셨겠지요. 미당 선생님은 ‘구경하는 까치부부도 없는 저승엔 희롱할 여자도 없다’며 늦게 가신 아버지를 놀리시겠지요.

 

아버지. 연극과 영화의 바람을 함께 누비던 조진구 아저씨와 사부로 아저씨는 아버지를 알아나 보실까요? 너무 오랜만의 해후라서 얼굴을 잊었을까 싶어요. “시를 쓰면 배고프니 그림을 그리게!” 충고하신 김해강 선생님 말씀과 금릉 선생님 덕에 그림을 그렸고, 아버진 평생 불우한 자와 공부하는 자들을 수없이 도와주셨으니, 그림은 아버지의 복덕을 짓는 도구였어요. 빼앗기고 빼앗겨도 그릴 수 있는 한 주고 주고 또 주신 아버지. 그래도 아직도 못 다 그린 그림은 마하의 공간에서 그리시어요. 97세 2월까지 붓을 들었던 오른손을 마지막으로 꼬옥 잡아 보았어요. 아버지, 제 손의 온기를 기억하시어요.

▲ 하반영 作 ‘빛’

아버지가 최후까지 탐구하고 표현한 빛의 세계, 마하의 세계, 생성의 세계를 무한 우주공간에 그리시어요. 이제부터 신의 세계를 표현하시어요.

 

아버지.

 

작은 우리 아파트 가득 아버지의 그림을 펼쳐놓고 바라봅니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남겨주신 만다라입니다. 큰 집을 마련하여 김시인과 함께 살다 가고 싶다 하신 소망을 이루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거의 반세기의 인연 동안 저에게 단 한마디도 궂은 말을 아니 하신 아버지. “김용옥 시인을 안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며 제 삶을 꽃으로 봐주신 아버지. 친정아버지 가시고 30년 동안 다수웠던 시아버지셨어요.

 

아버지.

 

빨주노초파남보, 아버지의 색 색 색 세상이 무념무상 빛 고운 만다라입니다. 이 세상의 눈과 눈에, 가슴과 가슴에 안겨준 아름다운 유산 속에 아버지는 영영히 기억될 것입니다.

 

아버지. 이젠 아버지가 가끔 찾아오셔서, 동토의 작고 노란 꽃송이를 바라보아 주시어요!

 

아버지. 저의 친정아버지 어머니께도 제 안부를 전해주시어요. 합장!

 

당신의 큰며느리 김용옥 시인 올립니다.

▲ 김용옥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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