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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명에 관한 단상

운명을 바꾸기 위해 이름 변경하지 말고 행복추구 위해 개명

▲ 박희승 안양지원장
법원의 기관장이 하는 업무인 개명(이름 변경)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사유들을 접하게 된다. 과거에는 개명허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바뀐 이름으로 초래될 수 있는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 등 공공적 측면을 강조하여 허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요즈음은 2005년 대법원 결정에 따라 이름이 가지는 공공적 측면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등을 고려하여 개명신청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닌 한 폭넓게 허가하고 있다.

 

각 법원마다 사정이 비슷하지만 안양지원의 경우에도 1년에 약 3000건 정도의 개명신청 사건을 처리하고 있고, 한 번에 한해서는 대부분 허가해 주고 있다. 문제는 한번 개명을 한 후에도 다시 개명신청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어려서 개명을 한번 허가받았음에도 성년이 되기 전에 다시 개명을 신청하는 경우에는 심문기일을 잡아 왜 다시 신청을 하는지 그 이유를 묻는다.

 

대개는 부모의 의사에 따라 재차 개명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여 그때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면 대부분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간혹 아이의 의사가 완강하여 꼭 이름을 다시 개명하고 싶다는 부모들을 만나면 난감할 때가 많다. 이런 사건의 경우 부모와 아이를 같이 심문하다 보면 부모가 아이 뜻에 맞추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아이를 따로 불러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가지고 놀린다고 한다.

 

학창시절에 의례 서로의 이름을 가지고 별명을 만들어 불렀던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하면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그다지 수긍하는 것 같지 않다. 학생이 성년이 돼서 신청하면 그땐 허가해 줄 수도 있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지 그때도 판사님이 여기 계속 계시냐고 물을 때면 나도 웃음이 나온다.

 

개명신청을 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보면 대부분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름에 걸고 기대는 심리가 많은 것 같다. 대학진학을 못 해서, 취직을 못 해서, 결혼을 못 해서, 사업이 어려워서, 가족이 중병에 걸리거나 사망해서 등 사연도 가지가지이다.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 이름인 것 같은데 점쟁이나 작명가가 대개는 이름의 획수가 맞지 않거나 액운이 끼었거나 손재수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 같고, 점집이나 작명소의 설명서를 첨부하여 법원에 개명신청을 하는 것을 자주 본다. 우스갯소리로 개명을 폭넓게 인정해 주었더니 점집과 작명소만 돈을 버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람의 운명이 이름을 바꾼다고 나아지고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몇 번이라도 허가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었다고 한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세계 143개국을 상대로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118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고 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음에도 우리는 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지나친 경쟁심 때문이 아니겠냐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름 변경에 자신의 운명을 걸기보다는 좀 더 예쁜 이름을 갖고 싶어서라거나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신청자가 많아져서 기꺼운 마음으로 허가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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