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고전문화연, 市에 건의 / "관작 회복 이미 100년 지나…황죽 작은도서관도 개명을"
남원시 도토동 부영5차 앞에 신설중인 인도교(연장 111m·2015년말 개통 예정)의 이름을 ‘유자광대교’로 이름 짓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원고전문화연구회(회장 소병호)는 최근 남원시청을 찾아 이환주 시장에게 이 같은 내용을 건의했다. 연구회는 또 유자광의 출생지인 고죽동의 황죽 작은도서관을 유자광 작은도서관으로 개명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연구회는 남원이 낳은 큰 인물을 남원이 배척할 이유가 없다는 점, 남원 지역사회는 유자광에게 진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는 점 등을 내세워 ‘유자광대교 및 유자광 작은도서관 명칭 사용’에 대한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소병호(73) 회장은 “남원사회는 유자광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유자광의 무죄가 증명되고 관작이 회복된지(1908년) 이미 10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여전히 죄인 취급을 하고 간신으로 매도해 명예를 훼손해왔다”면서 “유자광은 1908년(순종 2년) 양력 7월9일 칙명에 의해 죄명을 탕척받고 양력 11월26일에는 삭탈된 모든 관작을 돌려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이 내용은 1908년 7월12일자 황성신문 1면 관보에 게재됐다”고 설명했다.
소 회장은 이어 “유자광은 문무를 겸비한 인재였다.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천출은 감히 꿈조차 꿀 수 없었던 벼슬길에 올라 정일품 부원군의 지위에 오른 것은 그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라며 “유자광의 뛰어난 능력과 공을 인정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는 유일한 방법은 이름 석자를 부각시켜 주는 것이며, 그 대안이 바로 유자광대교와 유자광도서관의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사에 널리 알려진 유자광은 경주부윤을 지낸 유규(柳規)의 서자로 세종 21년(1439년) 남원 고죽동 황죽마을(옛 누른대)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뛰어난 재주로 자신의 신분에 당당히 맞서 세조·예조·성종·연산군·중종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임금을 모셨으나 연산군시대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낙인 찍혀 희대의 간신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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