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월호다. 정확히 1년 전 4월 16일. 단원고 수학여행단 등 탑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다. 여린 꽃잎들은 차디찬 맹골수도 밑바닥에 던져졌다. ‘그대로 있어라’는 선내방송은 있었지만 이들을 구해줄 국가는 없었다. 잔인한 4월의 봄날 유족과 국민들은 충격과 비통으로 피울음을 토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바다 밑에 갇힌 아이들은 ‘안전’이라는 화두를 바다 위로 밀어 올렸다. 최고통치권자는 국가개조를 선언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로 나누어진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1년이 흘렀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미국의 21살 조던 스피스가 지난 13일 끝난 마스터스 골프에서 우승했다.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의 감동이 물결치고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던지는 삶의 울림이 너무 강해서다. 스피스에게는 자폐증을 앓는 7살 아래 여동생 엘리가 있다. 스피스는 운동을 하면서도 엘리가 다니는 특수학교에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동생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끔찍하다. 그의 모든 목표도 엘리를 위한 것이란다.
스피스는 이렇게 말했다. “엘리의 오빠이기 때문에 겸손하게 살 수 있었다. 자폐 어린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당연시 하는 일상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그 나이에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의 감사한 마음가짐과 겸손한 태도는 경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스피스의 플레이는 화려하거나 격정적이지 않고 그저 무심할 뿐이다. 최선을 다하고 순리에 맡긴 뒤 그 결과를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우승 트로피는 겸손이 가져다 준 덤이다.
스피스와 전담 캐디 마이클 그렐러의 경청과 소통도 압권이다. 수학교사이자 초보캐디였던 그렐러는 2011년 스피스와 인연을 맺는다. 둘은 경기 내내 적절한 대화와 경청으로 전략을 짜고 위기를 극복한다. 편안함과 신뢰가 쌓이는 과정이다. 상대를 믿는 경청이야말로 난국을 헤쳐 나가는 최고의 소통임을 두 사람은 보여준다. 경청 또한 겸손이 전제되지 않으면 갖출 수 없는 덕목 아니던가.
다시 세월호다. 1년 동안 비극은 더 커져갔다. 국가개조는 고사하고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정치와 언론에 대한 불신만 깊어갔다. 심지어 기자를 쓰레기로 비유하는 ‘기레기’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언론이 강자를 감시하고 불의를 고발하며 정의의 편에서 약자를 챙기는 소임을 다하지 못한 비아냥이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거듭 부끄럽다.
뒤돌아보고 되짚어본다. 정부와 정치, 언론이 지난 1년간 무엇을 했는지. 대통령은 경청도 소통도 하지 않았다. 국가는 유족들을 죽은 자식을 돈으로 흥정하는 거간꾼으로 모욕했다. 정치권은 대책을 내놓기는 커녕 참사를 이념과 정파 다툼으로 활용했다. 일부 언론은 이제 세월호 피로감까지 들먹이며 유족과 국민을 갈라놓고 있다. 희생자와 유족, 국민을 상대로 한 권력들의 교만과 파렴치가 세월호 1년을 멈추게 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지 못하고 ‘국민안전’이라는 급박한 국가 명제가 헛도는 연유다.
올 4월 마스터스 우승자 조던 스피스가 보여준 겸손과 경청은 우리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준다. 세월호의 해법이 겸손과 경청에서 시작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 모르는 이 땅의 권력자들에게 아동문학가 박두순의 시 ‘꽃을 보려면’을 권한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 모두에게 삼가 머리를 숙인다. 체육부장·편집국 부국장
꽃을 보려면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꿇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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