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7000만원 투자해 수확 앞뒀는데…" / 모양 안 예뻐도 당도 충분 각계 지원 절실
멀리서 보니 수박껍질이 산탄(散彈)을 맞은 듯 희끗희끗하다. 잔설(殘雪)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 너머에서는 유진열씨(53) 부부가 농약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 묵묵히 일만 할뿐 별다른 말이 없다.
“일주일 만에 나왔습니다. 그동안 쳐다보기도 싫어서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살릴 수 있는 것은 살려야 하지요”
고창군 대산면 중산리에서 9000평의 땅을 임차해 노지 수박농사를 짓고 있는 유씨 부부는 “지난달 우박이 내려 농작물을 망친 뒤 어떤 사람은 아예 드러누웠고, 어떤 사람은 광주에 나가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가만히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때 아닌 우박이 내린 것은 지난달 14일 오전 8시 30분경. 고시포 쪽에서 강한 돌풍을 타고 온 5~15mm 크기의 우박이 대산과 공음, 무장 등지의 수박과 고추, 복분자, 블루베리 등을 휘젓고 지나갔다. 수박 수확을 정확히 한 달 앞두고 벌어진 재앙이었다. 비용 투입은 이미 모두 끝났고, 수확만을 앞둔 시점이어서 농가들의 상심은 더욱 크다. 유씨는 “토지 임대료와 인건비, 종자대, 농약대 등 그동안 투자된 것만도 7000여 만 원에 달한다”며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씨의 농장에는 3.3㎡ 당 2주씩의 수박이 심어져 있으며,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기 위해’ 1주에 1개씩의 수박만을 남겨놓고 나머지 꽃잎 등은 모두 제거한 상태다. 그런데 1개씩 남은 수박은 그 속을 쪼개보면 우박 맞은 쪽으로 심이 생기고 생장도 거의 멈춰져 있다. 수박 뿐만 아니라 줄기와 잎도 우박피해로 껍질이 벗겨지고 찢기고 끊겨 영양공급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이맘쯤이면 10㎏이 넘어야 할 수박이 7~8㎏ 정도에 머물러 있다.
인근에서 2200여평의 수박 농사를 짓고 있는 정재일씨(58)의 밭은 더욱 심각하다. 지금쯤이면 잎과 줄기에 가려서 수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도 멀리서 보면 줄기와 잎보다는 수박만 보인다. 작년까지 시설재배를 했는데, 올해부터 노지재배로 바꿨다가 피해를 입었다. 정씨는 “30년전 가을에 우박피해를 입은 적은 있어도 여름철 우박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무서워서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것같다”고 말했다.
유씨 부부는 “이번처럼 충격을 받으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며 “시설비 보조융자 등을 피해농가에 우선적으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북도의회 장명식 의원(고창2)은 “우박맞은 수박들은 생장이 제대로 안되고 겉모양이 흉해서 상품성은 없지만 당도는 충분하기 때문에 먹는데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기관·단체 등을 대상으로 수박팔아주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창군에 따르면 이번 우박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벼를 제외하고도 수박 153.6ha, 복분자 43.5ha, 고추 32.8ha, 과수 20.5 등 405농가에 288.6ha에 이르고 있다. 군은 조만간 피해정밀조사를 실시한 뒤 복구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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