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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한국의 전통, 판소리 - 강렬한 소리·추임새, 최고의 전통 예술

위대함 갖춘 고유한 음악형식 / 심청가 들으며 시적 감흥 느껴 / 다양한 방식으로 재창조 되길

▲ 장문희 명창의 판소리 공연 모습.

나는 월드뮤직 매거진 ‘송라인즈’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이 세상에 과연 고유한 음악형식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럴 때면 나는 대개 한국의 ‘판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판소리는 치열하고도 지난한 노력을 요하는 예술로 한 사람의 소리꾼이 이끌어가는 형태다. 그들은 이따금 탁하고 비명과도 같은 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오직 북장단에 맞춰 소리를 한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합죽선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몇 년 전, 판소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어 거의 죽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 뒤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만약 거미를 두려워한다면 이것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거미가 든 항아리에 손을 집어넣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좋아, 한번 판소리를 이해해보자”라고 결심했다. 판소리의 심장부인 전북에 있는 거미들의 보금자리를 찾게 됐다. 판소리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지만 돌아보니 하늘이 준 기회였다.

 

진실로, 필자에게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판소리를 마주했던 경험은 하나의 계시와도 같았다. 19세기부터 내려온 한 상인의 집으로 알려진 전주한옥마을의 학인당 마당에서,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병풍 앞에서 펼쳐졌던 판소리 완창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당시 소리꾼은 장문희 명창으로 30대 여성이었다. 그는 비교적 젊은 소리꾼이라고 여겨졌는데 ‘심청가’를 불렀다.

 

판소리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자막이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화면에 영어로 번역돼 한국말을 전혀 모르던 나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구슬픈 이야기가 간혹 우스갯 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청중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든 것은 그 ‘소리’가 만들어내는 표현과 시적인 감흥이었다. 심청 어미가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에서 소리꾼의 목소리에 묻어난 짙은 씁쓸함, 심청 어미의 장례식 풍경-수양버들이 우거진 정자에서 지빠귀가 노래를 부를 때의 딴 세상 같은 느낌-을 그 예로 말할 수 있다.

 

심청이 자살할 때는 그 장면 속의 모든 것이 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풀과 나무는 물론이고 심지어 산도 눈물을 뿌리고 새들도 작별을 고했다. 뻐꾸기 한 마리가 죽음을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그 내용이 그림처럼 생생하게 살아나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나는 지금껏 ‘심청가’ 완창을 3번 감상했다. ‘심청가’는 내가 들었던 소리들 중 가장 비극적이었고 여태껏 가장 좋아하는 소리다. 아무래도 ‘심청가’와의 만남이 어떤 특별한 계시와도 같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판소리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전주에서 들었던 ‘춘향가’는 가장 낭만적이었고, ‘흥보가’는 가장 재미졌으며, ‘수궁가’는 최고의 상상력으로 가득했다.

 

두루 이런 말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지금껏 보아온 판소리는 최고의 전통 예술 양식이기 때문이다. 고수는 장단을 맞출 뿐만 아니라 공연 전체를 통과하며 소리꾼을 격려해 극을 이끌고 열정적인 귀 명창 또한 추임새를 잊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판소리는 오페라에 비견되지만, 소리의 강렬함과 ‘얼씨구’와 같은 추임새를 청중이 함께 하는 방식은 오히려 플라멩코에 더 가깝다.

 

소리축제처럼 판을 꾸미고 친밀감을 만들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판소리를 감상하고자 전주를 방문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지난 2012년 소리축제 개막 공연 무대에서 안숙선 명창과 그의 제자 100명이 아주 감동적인 광경을 선사한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물론 방법이 이뿐은 아니다. 이자람 씨와 같은 소리꾼은 세계를 돌며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극장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다른 위대한 예술 형식처럼, 앞으로 판소리 또한 끝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창조되길 소망해본다.

▲ 사이먼 브로튼 영국 월드뮤직 매거진 송라인즈편집장

※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의 ‘사이먼 편집장의 월드뮤직 이야기’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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