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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공감] 고창마을공동체·식도락마을사업단

산나물 정식·풍천장어 밥상 등 향토음식 발굴 / 여행·체험 연계 콘텐츠 개발 공동체 회복 꿈꿔

▲ 고창 식도락사업단과 연기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앉아 콩나물상차림 시연회를 갖고 있다.

고창에 ‘맛(味)’있는 ‘소란(騷亂)’이 일고 있다. 맛을 개인의 취향으로만 가둬 놓는다면 소란은 맛과 병렬로 놓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맛을 한 공동체가 가꿔온 ‘모두’의 것으로 이해한다면, 소란이야말로 맛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맛을 소란으로 담아냈다. 잔치가 그렇고 축제가 그렇다. 어른들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로, 맛과 공동체의 연관을 풀었다. 맛과 맛 이야기가 어떻게 공동체의 관계망을 ‘맛나게’ 복원하는지, 그 소란스런 현장을 찾았다.

 

△ 잊혀진…마을·사람들·이야기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나들목에서 선운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선운산 들머리 풍천을 만난다. 인천강 풍천을 사이에 두고 왼편이면 선운산, 오른편 포근하게 펼쳐지는 마을이 연기마을이다.

 

고창이 품은 이야기의 근원은 참으로 깊다. 연기마을이 뒤편으로 이고 있는 연기제(堤), 그 푸른 깊이만큼 깊다. 강 건너 1500년 내력으로 자리잡은 선운사 하나만으로 차고 넘치는데, 고창의 대표적인 탐방로 ‘고인돌질마재100리길’이 마을을 휘휘 돌아가기까지 한다. 그 길 자락에서 굽이굽이 고인돌 선사의 이야기며, 생물권보전지역 태고의 이야기, 미당 서정주가 품었다 펼친 시의 향취가 번져온다. 게다가 ‘연기사’라는 옛절, 연기스님이야기며, 백허당 효자이야기, 분청사기 가마터며, 근세 동학에서 보천교로 이어지는 차경석 이야기가 마을 안에 고슬고슬 스며있다. 질세라 이제는 고창의 맛 이야기까지 피어나고 있다.

 

연기마을은 21가구 28명의 주민이 일구는 작은 공동체다. 고창 해리가 고향인 나종근(64세) 이장은 10여년 전 다시 고창으로 귀촌(귀향)을 살피다가 연기마을에 정착했다. 그리고 마을 당산나무 주변 가꾸기부터 시작해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몇 해 전부터는 마을소득사업으로 유기황콩나물을 시범 재배하고 있다.

 

몸에 좋은 유기황으로 기른 연기마을 콩나물은, 생으로 먹어도 좋다.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이며 비릿한 맛이 거의 없는 데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에 번진다. 이제까지 마을에서는 공동재배사에서 기른 콩나물을 생물로 유통시키거나, 과일·요거트 등과 함께 갈아서 마시는 용도쯤으로 활용해왔다. 얼마 전부터 ‘음식’의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식도락마을사업단과 결합하면서부터다.

 

△ 10개의 마을음식·이야기로 엮여

▲ 공동체 견학 일환으로 용담다목적댐을 찾은 주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식도락마을사업단(단장 김수남)은 고창의 마을음식을 발굴해 여행·체험과 연계하는 공동체지원조직이다. 그 바탕에 마을의 자립이라는 고리가 있다. 관(官)과 민(民)을 연계하는 중간지원조직이다. 지난 5월 첫 삽을 뜬 식도락사업단은 지금까지 10개의 마을음식을 발굴했다. 이것은 적어도 10개의 마을이야기를 찾아내 마을 주민들의 건강한 관계를 꿈꾸게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찾아낸 열 가지 스토리를 사업단 이승호 팀장이 노래처럼 읊는다.

 

“산나물이 마을 특화상품인 고창읍 화산마을의 산나물정식, 고창 대표음식 풍천장어 밥상 아산면 마명마을의 시래기장어곰탕, 대산면 상금마을의 쑥밥, 고창읍 호암마을의 도토리묵과 솔잎막걸리, 공음면 중여마을의 마카추어탕과 백숙, 이제 황윤석 선생의 자취가 깃든 성내면 조동마을의 닭숯불구이 사대부밥상, 첫 고사리로 자박자박 끓어낸 상하면 송림마을의 조기찌개, 신림면 용추마을의 홍시김치와 청국장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고창군과 사업단이 맨몸으로 일궈낸 마을음식과 이야기입니다.”

 

△ 다시 피는 공동체 이야기 꽃

 

그리고 연기마을이다. 마을의 콩나물 밥상은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차려진다. 갓 지은 밥에서 피어오르는 뜨신 김 마냥 이야기들이 고샅을 건너 밥상머리를 차지한다. 식도락사업단과 마을사람들이 어울려 상차림 시연하는 자리다.

 

“연기대사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살았다고 했지라, 혹시 콩 불려서 콩나물밥 해 먹지는 않았을랑가요.”

 

유기황콩나물과 갖은 양념, 다진 소고기로 만든 콩나물밥에 매콤한 콩나물바지락찜, 시원하고 고소한 콩나물바지락죽이 한상 가득한 작은 잔치가 열렸다. 마을부녀회 여자들은 아껴온 손맛으로, 마을 원로들은 이야기로 밥상 차리기를 거들고 있었다. 문제는 콩나물, 도대체 콩나물과 마을 이야기가 어떻게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을까. 신라 진흥왕대에 건립되었다는 연기사와 연기대사이야기는, 자연스레 조선 인조 때 효자 김하익 이야기가 깃든 백허당 큰바위로 옮겨갔다.

 

“혹시 효자 김하익의 모친이 콩나물국밥을 먹고 싶다고 허지 않았으까?”

 

“그래서 그 한 겨울에 콩나물 콩을 구하려고 이 마을을 지나갔다, 그말이여?”

 

효자 김하익이 병중의 모친을 위해 잉어를 구하러 가던 길에 호랑이를 만나 구사일생, 목숨을 부지한다는 이야기이다. 병중 모친과 시원한 콩나물국밥, 그럴싸하다. 오늘 맛본 이 사각거리는 콩나물에 시원스레 말은 국밥이라면, 넘어가던 숨도 다시 돌아올 태세려니.

 

△ 신명난 마을의 부흥 , 이야기 부활서 시작

 

마을의 새로운 특산물과 이야기를 이으려니 고생이다. 상하면 송림마을, 새봄 처음 딴 고사리와 햇조기로 조기찌개를 끓여올리고 집집마다 지냈던 ‘조구산제(조기산제)’처럼 음식과 이야기가 고민할 것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마을은 마을대로, 이렇게 새 음식이야기가 태어나는 마을은 마을대로, 의미가 깊다. 있던 이야기도 사라지는, 마을이 이야기의 무덤이 된지 오래인데, 다시 이야기가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옛 것은 옛 것대로 새 것은 새 것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회자(膾炙)를 거듭하는 이야기의 힘, 이것이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는 힘이다. 식도락사업단에서 추진하는 사업가운데 하나는 마을스토리텔러의 발굴과 교육이다. 그러고 나서는 음식과 여행, 쉼과 마을콘텐츠 체험을 마을사람들로 연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 모두가 이야기로부터다. 신명나는 마을의 부흥은 ‘이야기의 부활’로부터 시작한다.

▲ 이대건 고창책마을해리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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