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하신 어머니,
쪽 지던 머리를 깎이우고
푸른 승복을 입으셨다.
수계도 법명도 없는 몇 달의 행자생활로
벌써 경지에 이르셨는가.
기억을 버린 깊은 불심에
핏줄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길이
자식의 이마 너머 먼 산으로 비껴나간다.
접견실을 나가 눈썹을 말리는 남편과
휠체어 사이를 열대어처럼 휘젓는 아이들
얼룩덜룩 순서 없던 추억마저 표백시키며
삶의 끝이 요양병원 말뚝에 매인
어머님은 한사코 묵언수행 중이신데,
팔십 평생, 인생대장경을 주름으로 새긴 채
환자복을 맞춰 입은 반신불수의 노인들이
다르고도 같은 만불의 형상으로 보인다.
공양미도 못되는 초코파이와
요구르트 몇 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
백미러 속에서
물에 잠긴 절간이 점점 멀어진다.
……
△물속에 지은 절간 하나 소슬하시다. 부스러지기 잘하는 초코파이는 한가운데 달보드레한 마시멜로 덕분에 하나로 응집할 수 있다. 어머니는 성정이 달라 부스러지기 잘하는 자식들에게 마시멜로처럼 포근한 중심이 평생 되어 주셨다. 말을 삼켜버린 어머니의 기억도 열대어 같은 손주들 재롱에 잠깐 푸르게 반짝였으리라. 떠나는 신도의 뒷모습이 한없이 안쓰러운 어머니, 만불사 처마 밑에 풍경처럼 매달려서 그렁그렁 온몸이 흔들렸으리라. 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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