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사건 다룬 '자백' 해직 언론인 삶 조명 '7년-그들이 없는 언론' 독립·대안정신 주목 '인기' / 올해 첫 다큐멘터리상 시상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충직)는 대안·독립 정신을 기치로 하는 만큼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올해 상영작은 “우리사회가 현재 필요로 하는 내용을 담은 수작(秀作)”이라고 평할 만큼 높은 완성도와 현장감을 자랑한다.
매년 굵직한 다큐들이 주목을 받음에 따라 올해부터 다큐멘터리 부문 시상을 새로 마련했다. (주)진모터스의 후원을 받아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와 한국경쟁 부문 상영작 중 우수한 다큐를 선정해 ‘다큐멘터리상’(상금 1000만원)을 수여한다. 대상은 비경쟁 섹션인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의 영화 ‘자백’ 등 7편과 한국경쟁의 ‘마담B’ 등 3편으로 총 10편이다.
△ 대한민국을 직시하다
영화 ‘자백’은 다큐는 물론 올해 영화제 라인업 중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작품이다.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을 중심으로 40여 년간 발생한 간첩 조작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가 연출했다. 최 피디는 “국민들에게 숨겨진 진실을 알리고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며 “대안언론인 뉴스타파만이 넘을 수 있는 선이라고 생각하고, 3년 동안 취재를 이어갔다”고 말했다. ‘자백’은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거나 피해자 입장에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파헤쳐 사건 이면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공세적인 카메라와 들이대는 그들의 배짱에 관객들은 박수를 보냈다.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EBS에서 ‘지식채널e’를 연출했던 김진혁 한예종 교수가 연출한 작품으로,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8년부터 해직된 언론인들의 삶을 담았다. 표류하고 있는 언론 현실을 해직 언론인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이들은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가운데에서도 언론인으로 살아갈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한다. 저항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무뎌지고, 권력은 견고해지는 흐름 속에서 언론인의 길을 지키려는 고단한 여정은 쓰디쓴 감동을 준다.
탈북자들의 브로커 역할을 하는 중년 여인의 이야기 ‘마담B’(감독 윤재호) 역시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흔한 탈북자 다큐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거친 캐릭터와 상황보다는 여인의 굴곡진 삶을 쫓는다는 점에서 더욱 모호하고 풍부한 감정을 담는다.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는 “자본주의 천국 남한에 와서 겪는 환멸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삶을 망가뜨린 남한 국정원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며 “의외로 멜로 드라마틱한 요소도 있고, 다큐멘터리가 줄 수 있는 또 다른 충격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 삶의 이면을 들추다
‘코뮌 서울’(유자경)은 눈부신 부의 축적을 이룬 근대화 도시와 퇴락한 재개발 지역, 21세기 자본주의 서울에 관한 두 가지 낯선 풍경을 동시에 드러내는 작품이다.
‘노후 대책 없다’(감독 이동우)는 공연을 이어가기 위해 식당에서 서빙도 마다 않는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펑크밴드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들의 미래를 낙관하진 않지만, 그래서 노후 대책도 없지만, 이에 상관없이 펑크음악의 존재 이유를 당당하게 증명하는 밴드 멤버들의 자부심과 개성은 관객을 매료시킨다.
‘백스테이지’(감독 이재호)는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무대 이면의 삶을 조명한다.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한 선수들이 화려한 재기를 꿈꾸며 지옥 같은 훈련을 이겨낸다. 단 한 번의 패배로도 돌이키기 힘든 좌절감을 안아야 하는 그들이 어떻게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 종군기자였던 영국 사진기자 필립 존스 그리피스의 카메라 시선을 따라가는 ‘벌레의 눈물’(감독 정희도·이세영)은 베트남 전쟁의 참혹했던 기억들을 더듬는다.
‘할매-서랍’은 김지곤 감독이 부산 산복도로 재개발을 소재로 찍은 ‘할매’(2011)와 ‘할매-시멘트 정원’(2012)을 잇는 3부작의 완결판이다. 새로운 마을에서 살게된 할머니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흔적을 담았다.
△ 풍경과 사람, 어우러지다
‘비스타리, 히말라야’(감독 박정훈)는 네팔로 여행을 떠난 네 명의 뮤지션들이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교류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묘미는 감독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뮤지션들의 예상 밖 행동과 여정들이다. 그들이 목적한 여행을 포기하는 동안 화면을 채우는 것은 그들의 음악과 여행 도중 현지인들과 나누는 우정이다.
제주 해녀의 삶을 7년간 기록한 ‘물숨’(감독 고희영)는 그들의 고단한 삶을 수려한 풍경과 함께 녹여내 ‘아름다운 다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녀들은 지난 200년간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잠수해 수중에서 해산물을 잡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들 중 일부는 물질을 하다 목숨을 잃는다.
△ 기념비적 작품 되짚다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제작과정을 다큐로 만든 ‘올드 데이즈’(감독 한선희)도 주목받는 작품이다. 한선희 감독은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큰 국제적 영향력을 끼친 ‘올드보이’의 뒷이야기를 하나의 관점에서 재구성했다”며 “드러나지 않았던 영화의 이면을 탐사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그 당시 제작진들의 너무도 큰 열정과 애정을 최대한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비전을 위해 타협하지 않았던 박 감독의 예술적 자의식과 제작의 조건들, 다양한 관점에 서있는 스태프들의 충돌과 협업을 신비롭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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