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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3차 신청인 강은씨 "몸에 좋다해서 썼는데…화목한 가정 파탄"

육아하며 옥시 제품 사용 / 자신·딸 급성폐렴·천식 등 15년간 항생제 치료 받아 / "마트서 불매운동 벌일 것"

▲ 지난 5일 도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3차 신청자인 강씨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가습기 살균제를 믿고 사용하다 지금은 고등학생인 된 어린 딸과 자신에게 생긴 질병으로 인해 15년 동안 겪었던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박형민 기자

지난 2일 TV를 통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 옥시 레킷 벤키저 한국 법인 샤프달 대표를 본 강은 씨(47)의 움켜진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강씨의 입에서는 ‘하…’, ‘어떻게…’라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에게 포괄적 보상을 해주겠다는 대표의 사과 기자회견을 뒤로한 채 약 한 움큼을 잡은 강씨는 돌아서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 때문에 화목한 가정이 파탄났다고! 몸에 좋다고해서 썼는데. 바보같이…”

 

완주군 봉동읍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가습기 살균제 피해 3차 신청자 강씨는 식탁 위를 가득 메운 약통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가족사진을 꺼내 들더니 힘겹게 입을 뗐다.

 

“여기 왼쪽에 핑크색 가습기 보이죠? 그 옆에 있는 아이가 제 딸이에요.”

 

지난 1997년 결혼한 강씨는 2년 뒤 딸을 출산했다. 당시 ‘인체에 무해합니다. 가습기의 때를 없애 줍니다’라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의 TV 광고는 강씨의 뇌리에 지금도 선명히 각인돼 있다. 오히려 현재의 피해를 되새기는 단초가 돼 있다.

 

병약했던 아이를 위해 2000년 전주의 대형할인점에서 옥시 가습기 살균제를 샀고, 뒤에 사용설명서가 시킨 대로 가습기의 물을 갈 때마다 부지런히 살균제를 썼다.

 

그랬던 강씨와 딸이 돌연 아프기 시작했다. 2001년의 일이다.

 

“딸의 증상은 장염과 급성폐렴, 급성모세기관지염이었고, 저는 천식과 알레르기, 비염, 피부소양증, 축농증 등이 나타났다”고 했다.

 

강씨는 아이를 위해 전북대병원 치료를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몸에 좋다는 것은 뭐든 구하러 다녔다.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안 해본 것이 없어요.” 아이는 점점 녹초가 됐고 그것을 지켜보는 남편과의 불화도 싹 트기 시작했다.

 

결혼 전 직장에 다닐 당시만 해도 건강했던 강씨의 몸 상태는 15년에 가까운 약물치료를 하면서 몸에 살이 오르며 얼굴이 동그랗게 변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것은 물론 지금은 가벼운 산책조차 힘들다고 했다.

 

4년 전 제주도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던 그는 가족들의 얼굴을 무연히 바라봤다.

 

“둘째를 갖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어요. 매일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약을 먹고, 더 아플 때는 링거를 맞거나 항생제 치료를 받으니까요. 의사 선생님들도 장담을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3차 신청도 쉽지 않았다.

 

전북대병원과 전주병원, 예수병원, 동네병원 등을 누비며 그동안 치료를 받았던 기록들을 샅샅이 찾아 나섰다.

 

관련 자료가 될 수 있는 건 모두 찾아야 하는데 한 병원에서는 ‘이런 기록으로 가습기 살균제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힘 빠지는 얘기도 들었고, 모 병원에서는 ‘기록이 없어졌다’고도 했다.

 

15년 동안 강은 씨와 딸이 받아온 상처의 기록은 15㎏ 택배 1박스에 가득 담겨 한국환경산업기술원으로 보내졌다.

 

오는 8월3일에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딸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3차 신청자로 등급판정을 받기 위한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강씨는 “다음 주에는 인근 마트에서 옥시불매 운동할 것”이라며 “제품을 다 부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조사하고 밝힌 1·2·3차 도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자는 총 43명이고 이 중 2명이 숨졌다. 지역별로는 전주가 26명으로 가장 많고 완주 5명, 군산·익산 각 4명, 김제·정읍·임실 각 1명 등이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전북지역의 가습기 살균제 잠재적 피해자는 모두 2만5000명, 전북 지역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나온 전주시의 경우 잠재적 피해자가 1만9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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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현 realit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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