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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시대 도시 브랜드가 힘이다 ③ 슬로푸드 운동의 발상지 이탈리아 브라] '느림의 미학' 지구촌 음식문화를 바꾼다

삶의 여유 찾는 주민 식생활 문화 인상적 / 전통 방식의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 추구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브라(Bra)는 ‘느림의 미학’을 상징하는 달팽이가 연상되는 곳이다.

 

도시는 한낮에도 적막감이 감돌 만큼 고요했다. 인구 3만 명을 조금 넘는 이 도시의 거리에서는 행인도 이따금 눈에 들어온다.

 

이탈리아 특유의 붉은 기와지붕 건물에 수공예품 전문점과 치즈·초콜릿 가게 등이 보였지만 문을 열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삶의 여유를 찾는 주민들의 생활방식이라고 한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은 기다리다 못해 주변 거리를 한 바퀴 느릿느릿 돌고 온 후에야 하나씩 나온다.

 

관광산업과도 거리가 먼 이 조용하고 자그마한 도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달팽이를 심벌로 내세운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의 발상지가 바로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에 있는 브라 마을이다. 전 세계 160여 개국에 10만여 명의 회원과 1500여 개의 지부를 두고 있는 국제 슬로푸드 운동본부도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의 창시자이자 국제슬로푸드협회 회장인 저널리스트 카를로 페트리니가 바로 브라 출신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카를로 페트리니 주도로 시작됐다.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전문점 맥도널드가 들어서는 것에 이탈리아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선 게 계기가 됐다.

 

슬로푸드 운동은 지역에서 생태계와 환경을 존중하면서 자연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깨끗한 음식, 판매·유통과정에서 생산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는 공정한 음식을 추구한다. 대량생산을 통해 규격화·표준화된 맛과 미각의 세계화에 저항해 지역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생활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운동이다.

 

슬로푸드협회는 해마다 이탈리아 지역의 음식점을 평가해 달팽이 마크를 새긴 인증서를 부여한다. 슬로푸드의 가치를 지켰는지 여부가 선정 기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슬로푸드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는 지난 2013년 국제 슬로푸드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전북에서도 지역의 고유 음식문화를 농촌 관광자원으로 육성하는 ‘전북형 슬로푸드 마을’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북도는 내년까지 슬로푸드 마을 15곳을 조성해 지역 음식을 활용한 전북형 농촌관광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 파올로 디 크로체 국제슬로푸드협회 사무총장 "사라지는 전통음식 알리는 데 주력"

“세계 모든 나라에서 대량생산 체제로 똑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역에서 깨끗하고 공정하게 생산된 좋은 전통음식을 찾아내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파올로 디 크로체(Paolo Di Croce·46) 국제슬로푸드협회 사무총장은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늘 먹고 있는 음식의 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됐는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각 나라의 전통 음식을 찾아내 기록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식과 건강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식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됐는지를 따져 건강한 음식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식량이 필요에 비해 많이 생산되고 있지만 부족해서 고통을 받는 지역도 있다”면서 “이제는 식량 생산량이 아니고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크로체 사무총장은 “한국에서도 차(茶)가 유명하지만 차 대신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훨씬 많다”면서 “마케팅과 트랜드에 따르기보다는 음식의 질을 우선시하고 고유의 음식문화를 지키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세계 160여 개국에 슬로푸드협회가 조직돼 있고, 아시아권에서는 한국협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면서 “슬로푸드협회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전통 음식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문화는 여럿이 나누어 함께 먹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 같은 나눔은 슬로푸드의 철학과도 일치한다”고 말한 그는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 사찰음식과 비빔밥·김치를 꼽았다.

 

● [이탈리아 미식과학대를 가다] 조리기법 아닌 음식의 가치·철학 탐구

▲ 이탈리아 폴렌조에 있는 미식과학대학 캠퍼스.

슬로푸드 운동의 발상지 이탈리아 브라(Bra)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한적한 교외 마을 폴렌조(Pollenzo)에는 음식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세계 각국 학생과 요리 전문가들이 유학을 꿈꾸는 대학이 있다.

 

국제 슬로푸드 운동 창시자인 카를로 페트리니가 지난 2004년에 세운 ‘미식과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 이다.

 

이 대학에서는 대량 생산되거나 규격화한 음식을 지양하고 지역별 특성에 맞는 식생활을 발전시키려는 슬로푸드 철학을 바탕으로 음식과 관련한 과학과 사회학·문화를 가르친다.

 

요리나 조리기법이 아닌 음식문화와 음식의 가치·철학을 탐구하는 대학이다. 전공 과정은 ‘음식문화와 커뮤니케이션’, ‘전통음식과 홍보’, ‘음식과 건강’, ‘이탈리아 와인 문화’ 등이다.

▲ 미식과학대학 건물 지하에 있는 와인 저장소

대학 건물 지하 대규모 와인 저장소(Banca del Vino)에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생산된 포도주가 지역별로 보관·전시돼 있다. 또 학교 식당에서는 매주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이 와서 특유의 음식을 선보이기도 한다.

 

3년제 학부과정과 대학원이 운영되고 있고, 학생은 세계 각국에서 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슬로푸드 운동이 확산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대학 학생들은 각 나라 슬로푸드협회와 연계해 매년 열흘 안팎의 일정으로 해외 음식문화 탐방에 나선다. 강의실에서 벗어나 어느 곳에서 어떤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직접 살펴보고 그 지역의 음식문화를 체험하자는 취지다. 학생들은 우리나라 제주와 전남 완도, 충북 괴산을 찾기도 했다.

 

또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지난해 10월 20일 이 대학을 방문해 학생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사찰 음식을 소개했다.

 

사업단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사찰음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전통 장을 비롯한 다양한 발효 음식으로 만찬을 제공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 대학 홍보 담당 파올로 페라리니는 “음식을 잘 만드는 방법보다는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누가 어떻게 생산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등 전반적인 음식문화를 알려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음식을 360도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대학의 교육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학 설립 이후 2000명 정도의 해외 유학생이 찾아왔고, 그 중 한국 학생도 20명 가량이 공부했다”면서 “졸업생들은 세계 곳곳에서 슬로푸드의 가치를 알리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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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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