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소설가족, 스승 88세 기념 / 평생 써 놓은 49편 수록…"제자들은 내 생애 최고 보람"
지난해 가을, 원광대 출신 소설가 모임 ‘원광 소설가족’은 온돌방에 둘러앉았다. 자연스레 스승의 미수(米壽·88세)에 대해 논의했다. 제자들은 스승이 기뻐할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설’에 관한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자들은 스승에게 바치는 헌정 문집 <홍석영 단편 전집> 을 기획·제작했다. 소설가 홍석영이 평생 쓴 단편소설 49편을 묶었다. 단편 소설집 4권에 수록된 작품과 책으로 묶이지 못한 단편까지 한 권으로 집대성했다. 그의 여든여덟 해가 이 책에 모두 담겼다. 무겁고도 깊은 책이다. 홍석영>
소설가 홍석영은 익히 알려진 ‘원광 문학사단’의 중심에 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를 배출한 원광대에서 소설가 홍석영의 자리는 넓고 크다. 특히 ‘원광 소설가족’은 30년이라는 긴 역사를 자랑할 만큼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돈독하다. 매년 두 차례씩 스승과 제자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홍 작가는 평생 고향 전북을 지키면서 소설을 썼다. 전주사범학교 재학 시절, 교사였던 시인 김해강을 만났고 동기인 시인 하근찬, 1년 후배인 시인 신동엽 등과 함께 문학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원광대 국문과 교수로 있으면서 최기인,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 등 한국 문단의 굵직한 작가들을 길러냈다. 거의 60년에 이르는 ‘홍석영 문학’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거치면서 지금에 도달했다. 그는 평범한 일상에 들이닥치는 피할 수 없는 불행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붕괴시키는지 끝까지 주목하고, 그 이야기를 일상의 서사로 풀어내면서 홍석영 문학만의 독특함을 견지했다.
홍 작가는 긴 세월 남겨진 정신적 유산을 되새겨볼 때마다 항용 깊은 회한과 아쉬움이 가슴에 남는다고 했다.
“삶은 일회적인 것이어서 애초에 예습이나 복습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말이 있듯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애쓸 뿐이다.”
또 미수를 기념해 <홍석영 단편 전집> 출간한 제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 가운데 70여 명이 한국 문단에 등단해 이른바 문단의 ‘원광사단’이란 찬사를 듣게 된 것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라며 “그대들은 내 생애 최고의 보람이자 가장 절친한 동료 작가들이다”라고 말했다. 홍석영>
제자인 소설가 양귀자는 “스승이 있는 삶이어서 제자들은 모두 행복했다”며 “선생님도 그렇게 여겨주신다면, 그러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겠다”고 밝혔다.
홍석영의 본명은 홍대표(洪大杓). 1930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서 태어났다. 짧은 서울 생활을 제외하고 평생을 익산에서 살면서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쳤고 소설 쓰기에 몰두했다.
1960년 《자유문학》에 소설 <황혼> , <막다른 유예> 가 추천되면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원광대 교수, 문리대 학장, 인문대 학장을 지냈다. 단편 소설집 <이적의 밤> , <피서지> , <우리들의 대부님> , <바람과 사슬> , 장편 소설 <불꽃제단> , <숲에서 나무되어> , <천년의 한> , <양곡 소세양의 빛과 사랑> , <정여립> 을 출간했다. 정여립> 양곡> 천년의> 숲에서> 불꽃제단> 바람과> 우리들의> 피서지> 이적의> 막다른>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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