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학교서 공부 시작 / 정원 가꾸며 그림도 그려 / '꽃으로 여는 아침'발간
뒤늦게 한글을 깨우친 시골 할머니가 시화집을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완주 운주면 고당리에 사는 양덕녀 할머니(83)는 지난 2011년부터 완주 운주면사무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인 진달래학교에 입학해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여자는 가르치지 않은데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린 양 할머니는 그동안 까막눈으로 살아 왔지만 칠십 중반을 넘어서 배우기 시작한 글공부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렸다.
양 할머니는 “글을 잘 몰라 시내버스 타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게 답답했었는데 뒤늦게 한글을 깨우치면서 세상이 내 눈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정말 신기했었죠”
양 할머니는 한글공부에 쏙 빠지면서 집 앞 마당에 가꾸어놓은 정원의 꽃들과 글로써 대화를 시작하게 됐다. 평소 꽃을 좋아하던 양 할머니는 8년전 대전에서 이 곳 고당리 피목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집 마당에 왜철쭉과 장미 개나리 등 수십여종에 달하는 나무와 꽃을 심고 정원을 가꾸었다.
한글을 깨우치면서 정원 이름도 ‘꽃으로 여는 아침’이라고 붙였다. 양 할머니는 매일 꽃과 나무를 돌보고 가꾸면서 떠오르는 글들을 하나 하나 노트에 옮기고 글에 맞는 그림도 그려 넣기 시작했다.
“글을 알게 되면서 꽃들과 나누는 얘기를 공책에 옮기고 재주는 없지만 내 생각이 가는대로 그림도 그렸죠”
할머니의 재능을 알아 본 진달래학교 한글강사인 김현나 선생이 지난 2013년 교육부에서 공모한 전국 문해교육 시화전에 출품한 결과, 전국 최우수상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지난 2016년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주관한 시화전에서 우수상을 받는 등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전국대회에서 수상하는 실적을 올렸다.
이에 주위에서 할머니의 시화를 책으로 엮어보라고 권유했고 김현나 선생이 한 땀 한 땀 쓰는 작품들을 모아 출판사를 오가면서 도와줘 첫 시화집이 나오게 됐다.
책 제목은 할머니의 정원 이름을 따서 덕녀 할매의 이야기 꽃동산 ‘꽃으로 여는 아침’으로 붙였다. 100여 편이 넘는 시화가 실린 책에는 꽃과 나무, 새와 시냇물 등 자연과의 대화, 일상 속에서 묻어나는 시심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이가 들수록 눈이 침침해져서 글자도 잘 안보이고 생각도 잘 안 떠오르기에 꽃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살아온 시간을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첫 시화집이 나오자 주위에서 축하 인사와 함께 두 번째 책도 준비하라는 주문이 쏟아진다.
“군수님 선생님 이장님이 다음에 낼 책도 준비하라고 성화예요. 하지만 시인처럼 내가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욕심부리지 않고 하던대로 하는 거지요”
박성일 완주군수는 시화집에 축하의 글을 통해 “진달래학교 문해교육을 통해 양 할머니께서 용기 있게 세상에 내놓은 자전적 시화집은 완주의 자랑”이라며 “앞으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예술로 꽃 피워주시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꽃으로 여는 아침’은 160쪽 비매품으로 발간됐으며 미디어공동체 완두콩협동조합에서 재능기부로 편집·인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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